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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살 준이에게 온' 첫 사랑' [최정선/한국일보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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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26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a86de37cde454d04abe607b1bea41c84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5. 11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도 나무들은 앞다퉈 가지를 뻗는다. 초록이 짙어진다. 꽃들이 릴레이를 벌인다.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다.  

     

    다섯 살 준이가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 마트에선 따끈따끈한 신상품, 최신 모델의 로봇 장난감 ‘뿅가맨’ 판매 행사가 한창이다. 이름도 참 잔망스런 뿅가맨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 대열에 합류했다. 날렵한 투구, 우람한 어깨, 큼지막한 주먹, 반짝이는 빨간 몸통에 선명하게 새겨진 승리의 표식 V. 준이의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다섯 살은 사랑에 빠지기 쉬운 나이다.   

     

    하지만 엄마가 꿈쩍 않는다. “다섯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인데, 집에 비슷한 게 잔뜩 있단다. 지금 사면 뿅가맨 가면까지 준다는데. 치마꼬리를 붙잡고 눈물 콧물을 쏟아도 소용없다. 아, 무정한 엄마.  불황이라지만 로봇 장난감 시장은 여전히 승승장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어 아이들을 홀린다. 터닝메카드니 헬로카봇이니 종류도 많고 시리즈도 많아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기 힘든, 어른 눈엔 그게 그거 같으나 아이 눈엔 하늘과 땅 차이인 장난감 때문에 아이와 부모는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윤지회의 그림책 ‘뿅가맨’은 누구나 쉬이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 참으로 실감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명랑한 색조와 경쾌한 리듬에 실어 담백하게 펼쳐 보인다. 대담한 구도와 장난감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색상 연출이 인상적이다. 카탈로그처럼 꾸민 표지도 재미를 더한다.   

     

    유치원 버스에서도 뿅, 놀이공원 가는 길에도 뿅뿅, 동물원에서도 뿅뿅뿅. 온종일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뿅가맨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아이의 애절한 러브스토리, 그리고 더욱 화려한 새 로봇 ‘왔다맨’의 유혹.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다들 내 얘기, 우리 집 얘기라 하겠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공감이다.

     

    이 책은 말갛게 닦아놓은 거울 같다. 카드 결제일도 채 지나지 않은 장난감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보며 속 터지는 부모 심정을 모를 리 없건만 욕심 부리지 않고 딱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 어린 독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깨끗한 거울처럼 제 모습을 그대로, 고스란히 비춰 보여주기만 한다. 아이들에겐 소비니 절제니 자본이니 상술이니 하는 어른의 언어 대신 자신들의 언어가 필요할 테니까. 그걸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야 할 테고. 때론 너무 느려서 답답할지라도 말이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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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말이 말 같지 않아 보이니 어찌할 것인가 [김장성/한국일보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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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2-02
    조회수 : 80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4756ce4a0d96411a8c982e5682c790e6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01.20

     

    몇 달째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상한 대통령과 둘레의 속물들이 나라 꼴을 후줄근하게 만들어 놓은 까닭이다.

     

    드러난 폐해가 다채로워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분노와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깃거리도 각양각색인데, 그 가운데 ‘말 이야기’도 있다. 세상일이란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 흙수저 부모들의 처지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사태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말 이야기 하나 보탠다. 이 그림책은 한 아이의 ‘경마장 관람기’다. 말을 좋아해서 말 인형을 끼고 사는 여자아이가 할아버지를 따라 난생처음 경마장에 간다.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말을 보러 갔는데, 정작 그곳에서 말은 풍경의 일부일 뿐 보이는 건 한탕주의 욕망과 욕망에 찌든 군상들이다. 어쨌든 경주는 시작되고, 아이는 9번 말에 제 인형의 이름을 붙여 응원한다. “달려, 토토!” 찌든 눈보다 맑은 눈이 밝은 법. 토토가 우승을 차지하고, 아이는 그저 토토가 잘 달린 게 기쁠 뿐인데 어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는 담담히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슬퍼했다”라 표현하고 있지만, 어른들은 필경 예상지를 찢고, 마권을 구겨 팽개치고, 욕설을 내뱉으며 줄담배를 피워 댔으리라. 할아버지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에 가자고 했다.” 손녀가 곁에 있으니 속으로 분을 삭였을 테지. 그러나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할아버지, 돈 많이 못 땄어?” 이어지는 이 책의 끝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경마장에 갔다. 그런데 점점 지겨워졌다. 그리고 나는 토토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사실 토토를 다시 본다 한들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말들이 다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경마도 다른 도박과 똑같은 야바위다. 돈도 정보도 부족한데 한탕의 욕망만 들끓는 다수대중의 푼돈을 긁어모아, 이미 정해져 있거나 혹은 어쩌다 얻어걸린 소수에게 일부를 몰아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판을 벌인 자들이 쓸어간다. 그 야바위판을 달리는, 욕망과 협잡이 투사된 말들이 아이의 맑은 눈에 점점 똑같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독일의 전용 마장에서 어느 젊은이가 타던 그 말도 경마장의 말들과 다르지 않다. 이 나라 일등 재벌이 권력의 측근에게 수십 억원짜리 말과 함께 수백 억원을 몰아준 대가로, 다수대중의 수천 억원을 집어삼키고 수십 조원의 경영권을 챙기는 신묘한 야바위판을 벌였다. 그 다수대중은 한탕을 좇는 도박꾼이 아니라 평범하고 성실한 국민들이요, 그 돈은 헛된 욕망을 건 판돈이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 모은 노후자금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재벌 총수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말은 순한 눈과 늘씬한 자태, 고고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동물이다. 그러나 이젠 맑은 아이들에게도 말이 말 같지 않아 보일 것이다. 이를 어찌할 건가. 맑은 아이마음이 담긴 그림책 ‘달려, 토토!’는 작가의 조형적 천재성이 곳곳에서 반짝이는 멋진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두고 작품 외적 이야기를 늘어놓아 몹시 미안하다. 언제나 뻔뻔함은 저들의 것이요, 오직 미안함만 우리의 몫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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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한국일보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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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9-09
    조회수 : 738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s://www.hankookilbo.com/v/f4ae262683e04e7b8de524cc6b935f72

    필자 : 김장성, 그림책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6.09.2 (금)

    누구나 평화를 바란다. 지금 이 신문만 훑어봐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이 평화롭지 않으므로.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평화’란 어떤 걸까? 사전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표준국어대사전’)라 정의한다. 맞지만 공허하다. 평화란 어떤 상태일 뿐만 아니라 이상이요 목표일 텐데, 그것을 향해 갈 구체적인 실천의 지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문제를 생각해 보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화자는 아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말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폭격기가 날아오고 폭탄이 떨어져 일상이 부서진 전쟁터에서, 엄마 품에 매달린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평화란 “전쟁을 하지 않는 것”, “폭탄 따위는 떨어뜨리지 않는 것”, “집과 마을을 파괴하지 않는 것.” 그 까닭도 명료하다. “왜냐면,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보다 더 또렷하고 절실한 이유가 또 있을까?

    아이의 평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배가 고프면 누구든 밥을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도 할 수 있는 것”, “사람들 앞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는 것”, “싫은 건 싫다고 혼자서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 타인의 시선을 얻은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자 일상이지만, 세상의 수많은 ‘누군가’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절실한 바람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까. 나만 평화롭다고 평화로운 게 아니니까.  아이는 이제 ‘관계’ 속에 선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 “어떤 신을 믿더라도, 신을 믿지 않더라도, 서로서로 화를 내지 않는 것.”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누구나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할 때, 자신의 잘못과 남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평화는 요원해진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반성과 존중은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전제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이 ‘한중일 작가들의 공동 기획’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느껴진다.

    잘못의 인정과 사과는 평화를 위해 필요한 ‘과거에 대한 태도’이고, 다름에 대한 관용과 존중은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자세’다. 그 반성과 존중으로 너와 나는 ‘우리’가 된다. 어우러진 ‘우리’가 평화를 이루어간다. 어우러져 마음껏 뛰어 놀고, 아침까지 푹 잠을 잔다. 그리고 입을 모아 외친다. “목숨은 한 사람에 하나씩, 오직 하나뿐인 귀중한 목숨”이니, “절대 죽여서는 안 돼. 죽임을 당해서도 안 돼. 무기 따위는 필요 없어.” 싸우는 대신 “모두 함께 잔치를 준비하자.”  그리하여 기다리고 기다리던 평화로운 날에 다 같이 신나게 행진을 한다. 그제야 아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네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너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책 속의 아이는 책 밖 어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요청하는 것처럼.

    한일 정부는 이른바 ‘위안부 합의’에 따라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지급하겠다고 한다.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니 마니 오가는 말들은 종잡을 수 없이 혼탁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졸렬하고 사악한 처사다. 아이들이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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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답다는 것, 여자답다는 것 [김장성/한국일보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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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7-18
    조회수 : 58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a320aed2470c4d8fa34bbc465ba21653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 6.29

     

    숲 속에 두 사람 살고 있다.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둘 사이에 특별한 사건도 없다. 그 또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뭣이 중한가?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건 다만, 두 ‘인물’이다.

     

    근육 아저씨는 취미가 새들 무등 태워 주기와 다친 새 치료해 주기. 양 팔을 올려 뫼 산 자를 만들고 근육이 잘 발달한 어깨와 상박에 새들을 앉힌 자태는 웅장하여 위엄 있고, 붕대 한 끝을 입에 물고 아기 새의 다친 날개를 싸매 주는 모습은 섬세하고 따뜻하다. 새들이 떼로 몰려와 무등을 타겠다고 성가시게 굴어도 “얼마든지 타도 좋지만 눈은 가리지 말아야지” 타이를 뿐이다. 제 팔뚝에 그네를 매어 아기 새가 다시 나는 걸 돕기도 한다.

     

    뚱보 아줌마는 어떤가? 개미가 밟힐까 조심하느라 걸음이 늘 뒤뚱거린다. 개미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고, 개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땐 모두 무사히 돌아가 잠들 때까지 엎드려 지켜봐 준다. 그러다가 저 자신이 먼저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개미들은 ‘뚱보 아줌마가 감기에 걸리면 안 되지’하며 연둣빛 나뭇잎을 수없이 물어다 덮어 주고, 잠든 아줌마를 본 아기 새는 서둘러 근육 아저씨에게 날아가 일러 주는 것이다. “뚱보 아줌마가 또 땅바닥에서 잠들었어요.”

     

    황급히 달려온 근육 아저씨는 뚱보 아줌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둘러 업는다. 집에 데려다 줄 테지. 둘의 보금자리일까 뚱보 아줌마네 집일까? 아무려면 어떤가. 어쨌든 근육 아저씨는 뚱보 아줌마를 편히 잘 수 있게 해 주리라. 그러곤 무엇을 할까?

     

    다음 장면을 보니 뚱보 아줌마가 나팔을 불며 조그만 자전거를 타고 온다. 나팔로 ‘개미들아, 내가 가니까 다치지 않게 피해다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 자전거와 나팔은 어디서 났을까? 책머리로 돌아가 보니, 근육 아저씨가 연장통과 바퀴 두 개를 들고 머리 위엔 나팔을 입에 문 새 한 마리 얹고 달려가는 프롤로그가 있었다. 그 나팔, 그 자전거 바퀴였구나. 그러고 보면, 작가는 근육 아저씨를 주되게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위엄 있고 웅장한데 섬세하고 따뜻하며 배려할 줄 아는 남자.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 건가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산다. 거기 성정체성이라는 항목도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필자는 남성으로서 ‘남자답게’ 살고 싶은 관념이 있다. 그런데 남자다움이란 무얼까? 걸핏하면 ‘사나이’ 운운하는 ‘쎈 남자’들의 언행이나, 자신이 ‘남성 대표’인 줄 아는 먹물들의 ‘남자 설명서’를 보면 알 수 있을까? 두어 달 새 ‘발정제’니 ‘노룩패스’니 “걘 단지” 따위로 입길에 올랐던 남자들의 경우를 보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여성’ 작가 조원희가 만든 이 멋진 그림책을 보니 알겠다.

     

    어? 그럼 우선 근육부터 키워야 하나? 아! 나는 숲속에 살지 않으니 상관없겠다. 그보다는 숲속의 근육이 숲 밖에선 무얼까 생각해 봐야 할 듯. 그 전에 먼저 섬세하고 따뜻하며 배려하는 태도를 길러야겠지… 어? 근데, 그건 남녀불문 ‘사람’의 덕목이잖은가? 아! 중요한 건 그저 사람답게 사는 거였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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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거진 물풀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일보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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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1-21
    조회수 : 54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e7494c04250d4e08b4b5bd9761c29017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6.11.18

     

    물고기 한 마리 헤엄쳐 간다. 머리에 중산모 올려 쓰고서. 녀석은 독자들에게 제가 쓴 모자의 내력을 들려준다.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그냥 몰래 가져온 거야. 커다란 물고기한테서 슬쩍한 거야.”…도둑질한 모자였구나!

    자신의 범죄 행각을 일러준들 책 밖의 독자들은 책 속의 이야기에 개입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걸 보니 녀석은 교활하고, 자못 의기양양하다. “모자를 가져가는 줄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자던데? 커다란 물고기는 아마 오랫동안 잠에서 안 깰 거야. 잠에서 깨더라도 모자가 사라진 건 알지 못할 거야. 모자가 사라진 걸 알게 되더라도 내가 가져갔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할 거야. 내가 가져갔다는 걸 눈치 채더라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를 거야.”

    커다란 물고기의 우매를 확신한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제 행선지를 밝힌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한테만 살짝 말해줄게. 키 크고 굵은 물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에 가는 거야. 그 안에 있으면 잘 보이지 않아. 아무도 날 찾아내지 못할 거야.” 그러나 완전한 범죄가 있을까? 이야기 속에도 목격자가 있으니, 눈알을 길게 빼고 옆으로 걷는 게. 그래도 물고기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누가 날 보긴 했어. 하지만 내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어. 그래서 난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 묵인의 대가로 무엇을 주고받았을까?

    목격자의 입을 막은 도둑은 이제 자기 행위의 정당성까지 주장한다. “모자를 훔치는 게 나쁘다는 건 알아. 이게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냥 내가 가질래. 어쨌든 커다란 물고기한테는 너무 작았어. 나한테는 요렇게 딱 맞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윽고 ‘그곳’에 다다른다. “와! 드디어 다 왔어! 키 크고 굵은 물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이야!” 쾌재를 부르며 훔친 모자를 마음껏 즐기고자 한다. “내가 잘 해낼 줄 알았다니까. 아무도 날 찾아내지 못할 거야.”

    여기까지가 ‘도둑 물고기’가 하는 말을 옮겨 적은, 이 책의 글이 전하는 이야기다. 글만 읽은 독자는 분노가 치밀 법. 하지만 그림책의 이야기는 그림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니, 그림이 보여주는 상황은 도둑 물고기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커다란 물고기는 도둑 물고기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 이미 잠에서 깨었고, 도둑이 간 방향을 묵묵히 쫓아갔으며, 그 길에서 마주친 목격자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아 도둑의 은신처를 알아낸다. 그리고 도둑 물고기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키 크고 굵은 물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그곳으로 쳐들어간다. 이후 글 없이 그림만 이어지는 몇 장면 뒤에 우리는 커다란 물고기가 모자를 되찾아 쓰고 그곳을 나오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응징과 단죄가 이루어졌을까? 궁금하지만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우리 ‘독자’들은, ‘이야기란 무릇 어떤 현실의 은유’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야기로써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곤 한다. 권력집단의 교활과 교만과 추한 거래와 파렴치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즈음, 이 책 속의 ‘모자’와 ‘도둑 물고기’와 ‘커다란 물고기’, ‘목격자 게’, ‘굵은 물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 들은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런 반성도 없이 거짓과 꼼수로 빠져나갈 길만을 도모하는 저들을 지켜보며, 이 책이 직접 보여주는 대신 독자의 상상에 맡긴 말 없는 마지막 몇 장면 -우거진 물풀 속의 응징과 단죄에 우리 ‘백만 촛불’은 어떤 의지를 투사해야 옳을까.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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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소윤경/한국일보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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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34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dc4970d9967443df978b93747bb2d7fb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5.18

     

    세상이 빨리 변하는 것 같아도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인식의 변화는 고약하게 느리고 더디기만 하다.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와 탐험가들이 이 견고한 벽을 깨뜨리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 17세기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가 신성모독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던 것처럼 세상 다수의 시각을 넘어서는 일에는 오랜 투쟁이 필요하다.

     

    네모난 세상에서 사는 네모 고양이 알릴레오는 창 밖 하늘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신기한 것’을 본다. 알릴레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상은 네모이고 네모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네모난 사람들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알릴레오는 처음 보는 동그란 고양이를 만난다. 그 아이를 따라 가니 ‘신기한 것’이 거기 있다. 독자는 그것이 기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이와 알릴레오는 기구를 함께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네모로만 보였던 세상은 수많은 네모들이 모여 하나의 붉고 둥근 구의 모습이다. 둘은 내친 김에 파란별로 모험을 떠나간다. 파란별에는 세모난 사람들이 네모난 별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모두들 당연히 세상은 세모이고 세모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멀리서 보면 모든 별들은 둥근데도 말이다. 저 멀리 초록별이 반짝이며 손짓한다.

     

    서태지의 아트디렉터라는 독특한 경력을 지닌 강지영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실크스크린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 때문에 상업미술이나 팝아트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사회적인 통념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담기에 적절하다. 우리는 한 자리에 박혀 오도 가도 못하는 수많은 사각형이나 삼각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통념에 순응하다 자신의 진실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닐까.

     

    비록 작은 의구심으로 시작된 탐구는 진실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 강을 이루고 넓은 바다에 다다른다. 여전히 세상에는 붉고 네모난 사람들과 푸르고 세모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먼 별나라 사람들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도형들도 맞물려 모이면 둥근 원이 될 수 있고, 둥근 원은 구를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소윤경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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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도 인간도… 생명의 무게는 같아요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2
    조회수 : 832

    미디어 : 한국일보_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0b538c42375b4ab7b3faf3820de8f6dc

    필자 : 소윤경 그림책작가

    등록일 : 2016.07.22​

     

    아스팔트마저 녹아 내릴 듯 더운 여름 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옆 차선에 트럭 한 대가 나란히 선다.

     

    화물칸을 보니 층층이 비좁은 철창 안에 닭들이 빼곡하다. 초복이 코앞이다. 달아오른 철창 속에서 닭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실신 상태이다. 그나마 가장 자리에 있던 닭들은 마지막 세상구경이라도 했을까? 꽃잎처럼 깃털들이 도로 위에 휘날린다. 트럭이 속도를 낸다. 차를 달려 약속 장소에 가보니 먼저 온 친구들이 치킨과 맥주를 시켜 놓았다.

    ‘돼지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떠올리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2010년 겨울, 살처분된 돼지들의 생생한 보고서이다. 어미돼지는 분만사에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쇠틀이 몸을 누르고 있어 제 새끼조차 맘껏 핥아줄 수도 없다. 3주 후, 어미는 새끼들과 분리되어 또다시 인공임신을 하러 사육틀로 끌려 나간다. 생이별 속 어미의 눈빛이 애절하다. 번식용 암컷들 외에 나머지 새끼 돼지들은 6개월 후 도축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고기’가 될 운명이다.

    어느 눈 내리던 겨울 밤, 돼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기봉과 몽둥이로 축사 밖으로 내쫓긴다. 앞마당엔 커다랗고 검은 구멍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들을 삼켜대고 있었다. 마지막 세상 구경에 분주한 돼지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포크레인들이 돼지들을 목적지로 재촉한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어미가 새끼와 재회한다. 황망하고 불안한 눈빛들이 마주친다. 그 겨울, 눈송이처럼 많은 생명들이, 땅 속으로 스몄다. 파이프를 꽂은 검은 구멍도 그날 이후로,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돼지들이 사는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돼지들보다도 더 살찐 도시를 먹여 살리기 위한 공장은 멈출 수가 없다. 동물들의 희생에 대해 인간이 치러야 할 몫은 얼마일까? 유리 작가는 말한다. 돼지들도 인간들과 같은 생명의 무게를 지녔지 않느냐고.  마지막 페이지를 차마 덮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돼지들의 눈빛들마저 덮일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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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네!"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9-09-19
    조회수 : 193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내가 귀한 존재이구나! 사랑받는 존재이구나!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 살아갈 소명을 발견하게 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엄마 악어가 엄청나게 큰 알을 낳았습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형제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래서 '굉장이'라 부르며 어떤 굉장한 녀석이 태어날지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찌지직~ 알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숨죽이고 지켜봅니다.

    그러나 그 큰 알에서 태어난 굉장이는...세상에... 황새다리처럼 가늘고 입도 작고 코리도 뭉툭한 볼품없는 모습이었지요.

    엄마가 말합니다. "그래도 악어니까 헤엄을 칠 수 있을지 몰라요."

    엄마가 굉장이를 안으려는데 형들이 펄쩍 뛰며 야단법석을 떱니다.

    "굉장이는 잘 먹지고, 잘 걷지도 못하잖아요. 분명 꼬리도 약해서 꼬르륵 가라앉을 거에요."

    굉장이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목을 쭉 빼고 보니 형들 말대로 꼬리가 뭉툭하지 뭡니까?

    굉장이는 너무나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허겁지겁 돌아와 굉장이를 보시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온몸으로 웃어 젖힙니다.

    "아하하하!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요 몸으로 커다란 알을 깨고 나왔으니 돌도 삼킬 수 있겠구나!"

    할머니가 큼지먹한 먹이를 주자 굉장이는 정신없이 먹어 치웠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저 야무진 입 좀 보라고! 요 몸으로 저 큰 알을 깨고 나왔으니 코끼리처럼 쿵쿵 잘도 걷겠구나."

    할머니가 굉장이를 바닥에 내려 놓자 굉장이는 움츠렸던 몸을 쫙 펼쳤어요.

    그리고 기지개를 크게 켜고는 성큼 성큼 걸었지요.

    "내 이럴 줄 알았어! 다리의 힘 좀 보라고! 아하하하!"

    할머니는 굉장이를 번쩍 들어 호수에 담갔습니다. 굉장이는 신나게 헤엄쳤지요.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저 낼랜 꼬리 좀 보라고, 아하하하!"

    굉장이는 형들과 엄마아빠, 할머니, 숲 속 모든 이웃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차게 힘차게 연못속으로 잠수를 합니다.

    기가막힌 마지막 장면.

    굉장이는 양 팔에 새로 발명한 날개를 달고 "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네!" 하며 나뭇가지에서 날아오르기를 시도합니다.

    멋진 굉장이입니다. 더 멋지신 분은 바로 할머니 입니다.

    할머니의 한마디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

    할머니의 무한한 손주사랑일 뿐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몸으로 이렇게 커다란 알을 깨고 나왔다면 ?? 조금만 신중히 들여다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작다고 어리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자세히보면 그 존재의 내면에 있는 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청소년이 있습니까? 그런 청년이 있습니까? 그런 어린아이들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라며 큰 소리로 웃어젖히는 누군가입니다.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한사람입니다.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남편에게,,,, 그런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랍니다.

    그 힘과 사랑을 깨달아 자신을 새로 발견한 굉장이의 한마디가 즐거이 입가에 맵돕니다.

    "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네!"
    ​그림도 멋지고, 이야기 흐름도 훌륭하고, 메세지도 의미있는 이 책이 왜 주목을 받지 못하는지... 나는 참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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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맴맴’ ‘츳츳’ ‘쓰르람’ 하루종일 날아다니는 글자들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2
    조회수 : 617

    미디어 : 한국일보_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0ea7776d49174757a7f6a214b7eda3f1

    필자 : 소윤경 그림책작가

    등록일 : 2016.08.19​

    아파트의 밤은 길고 지루한 열대야에 속수무책이다. 설상가상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더위만큼이나 짜증스런 불청객이 아닌가.

     

    자세히 들어보면 매미소리는 한 가지가 아니다. 참매미는 규칙적으로 “맴~ 맴~ 매에~엠…”하고 울고, 말매미는 “치르르르…”하고 운다. 집단적으로 맹렬하게 우는 매미는 대부분 말매미 수컷들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는 기껏해야 수주일 번식기가 전부이다. 암컷을 만나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은 제 수명을 다한다. 도시에서 사는 매미들은 또 다른 적들과 싸워야 한다. 제 무리들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음들과도 맞서야 하니 그들의 노랫소리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매미들도 사람들과 함께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맴’은 신인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리드미컬한 그림책이다. 매미가 주인공이지만 매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맴맴, 츳츳, 쓰르람처럼 글자들이 매미 떼처럼 물 흐르듯 흩어지고 모였다가 다시 무리 지어 날아다닌다. 수묵화로 그려진 붓의 율동이 가볍고 자유분방하다. 독자들은 그림책을 보다가 점점 증폭되는 매미소리의 환청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한 나무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매미들은 다양한 소리로 바람을 타고 숲 전체에서 퍼져 울다가 도시로 날아간다. 매미 떼는 건물에 부딪히기도 하고, 자동차 소음과 뒤섞여 뒤엉키기도 한다. 더위를 먹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붉게 달아오른다. 불타는 태양과 함께 매미소리들은 절정에 오른다. 귀청이 떠나 갈 듯하다. 마침내 매미소리는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리는 소낙비에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귀와 마음까지도 정화시켜주는 씻김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이것이 ‘여름이다!’라고 말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제 몫의 책임을 다하고, 인생의 목표를 성취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혼신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와 닮았다.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계절의 정취로나 느껴졌던 매미소리가 이젠 하루 종일 울려대는 고장 난 시계의 알람처럼 귀 따갑고 속 시끄러운 것이 유감천만이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 그치고 나면 여름도 끝날 것이다. 한해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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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어딘가 쿵... 난국에 대처하는 법 [이상희/한국일보 20170622]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7-17
    조회수 : 34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2efd03074d5a45bfaf4a9bdddbbff44e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 6.22

    살다 보면 어딘가에 쿵, 부딪칠 때가 있다. 아프다. 찔끔, 눈물이 나게 아프다. 무엇보다 민망하다.

     

    붉어진 얼굴로, 상처를 들여다볼 새 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목격자가 있는 경우의 난처함도 만만찮지만, 가장 불행하기로는 목격자가 친절을 베푸느라 다가오는 경우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째서 친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운한 상황을 감추기에 급급해지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쓰며 딴전을 피우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좋았던 일이 없었다는 경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거짓 행동 또는 거짓말을 일컬어 ‘혼란한 마음이 일으키는 순간적인 거짓’이며, 이에는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허영심이 일으키는 거짓’이 섞여있다고 말한다.

    어떤 거북이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쿵, 바위에 부딪친다. 최덕규의 그림책 ‘거북아, 뭐 하니?’의 첫 장면이다. 그림책을 제대로 즐기는 독자라면 앞 면지의 그림으로 유추해 거북이가 가파른 언덕에서 몇 바퀴나 굴렀다는 전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껏 가속도가 붙은 채 굴러 떨어지고 마침내 부딪쳐 멈춘 자리는 하필 제 덩치만한 바위이다. 부딪쳐도 아주 호되게 부딪쳤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몸이 뒤집혔다는 사실, 거북이는 여느 때 자기를 든든히 보호하던 등딱지가 자기를 일으킬 수 없게 만든 난국에 처했다.

    스탬프 판화 기법으로 연출된 숲속 공간을 배경으로 거북이 하나가 뒤집힌 채 낑낑거리고 버둥대는 모습이 줄곧 반복되는 이 그림책이, 그러나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고정된 무대에 참새와 토끼와 멧돼지, 원숭이와 악어와 두더지가 각각 등장하고 퇴장하는 연극적 상황이 흥미진진할뿐더러 거짓과 진실 사이를 줄타기 하는 우리 삶의 여러 국면을 떠올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무대 한쪽에 붙박힌 존재들이 고도(Godot)를 기다리던 그 부조리극을 떠올리게도 한다. 거북이는 자신의 심상찮은 상황을 본 누군가 ‘뭐 하니?’라고 물어올 때마다 엉뚱한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심술을 부린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언덕을 굴렀고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에 몸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이 급해 걸음을 서둘렀던 실수와 뒤집힌 몸을 스스로 힘으로는 바로 일으킬 수 없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그러저러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될 일을, 잔꾀를 부려 도움의 손길을 쫓는다. 마침내 더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더도 덜도 없이 순정한 비명을 외친다. “도와주세요!”

    이른바 탈 진실의 시대, 끊임없이 계속되는 청문회 정국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저지르는 비리와 오류와 패륜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무엇으로, 어떻게, 자기 정의를 갖추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림책은 난국을 벗어난 거북이가 낯을 붉힌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는 결말로 끝맺고 있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일도 잊고 걸음을 재촉하는 그 낯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있다. 이 단순한 서사는 아이에게는 비슷한 난국에 처했을 때의 해답이 될 것이며, 어른에게는 이미 경험한 국면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소하고 우연한 거짓을 돌이키게 해준다. 때로 하찮게 구는 자신을, 때로 정의롭지 않게 구는 자신을, 허점과 약점과 실수가 줄줄이 드러나던 어느 날의 자신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질 테지만 싱긋 웃을 일이다. 살다 보면 어딘가에 쿵, 하고 부딪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