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6722
    • 이빨 사냥꾼(TEETH HUNTERS)
    • 그림작가 조원희
    • 글작가
    • 페이지 36
    • 출판사 이야기꽃
    • 발행일 2014-11-17
    • 수상내역
    • 2017 볼로냐라가찌상 코끼리가 사람을 사냥? 뒤집어 생각해 본 불편한 진실 [이상희/한국일보 20170225]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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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가 사람을 사냥? 뒤집어 생각해 본 불편한 진실 [이상희/한국일보 20170225]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3-23
    조회수 : 388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m/v/6bc5b448e1574c88909ebdfdb4efb8da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2.10

     

    ‘오, 두 손을 물속에 잠그라/ 손목까지 잠그라/ 들여다 보라, 대야물 속을 들여다 보라./ 무엇을 잃었는가 생각해보라’ (W. H. 오든의 시 ‘어느 날 밤 산책을 하며’ 부분)

     

    세수를 하다가 한때 늘 품고 다니던 오든의 시구가 생각났다. 3분이면 해치우는 세수가 길어졌기 때문인데, 손톱을 바투 깎아서 다친 손가락과 종이에 베인 또 하나의 손가락 덕분이다. 세면대 물에 잠근 손들이 떠올린 것은 잃은 것, 실패한 것, 놓친 것 뿐이 아니었다. 버린 것과 놓아버린 것도 떠올랐다. 그렇다. 생각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으면, 그 생각을 길어 올릴 끈질긴 시선이 없으면, 너무도 자명한 사실들에조차 얼굴을 돌리게 된다. 눈 감게 된다.

     

    ‘이상한 꿈, 지독한 현실’이라고 부제를 단 조원희의 그림책 ‘이빨 사냥꾼’은 인간의 상아 남획을 ‘코끼리 족속의 거인 치아 사냥’으로 뒤집어 그리면서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한 혹독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코끼리들이 활로 쏘아 잡은 거인의 입을 열어 톱과 스패너로 이를 뽑고 나르고 선별하고 경매해 나눈 다음, 다듬고 깎아 만든 장식품과 장신구를 팔고 사며 즐긴다. 자주색 물감을 흠뻑 먹인 장지에 그려진 치아 소재 코끼리상이며 촛대며 목걸이며 파이프와 시계와 선글라스와 도자기가 진열된 고급 상점가 쇼윈도, 그 앞을 오가는 우아한 쇼퍼 코끼리들 모습이 기묘하게 섬뜩하다. 다행히 여기까지, 줄곧 글 없는 그림만으로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한 아이의 악몽이다.

     

    그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아이는 그야말로 ‘지독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어른들이 저마다 코끼리 이빨을 지고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 아이는 마음먹지만, 상아를 옮기기에 바쁜 사람들은 아이의 악몽 이야기를 들을 성싶지 않다. 듣는다 해도, 그 노획물을 불편해 하거나 그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 여행 선물로 건네는 상아 도장이나 상아 거울을 받으면서 우리가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멀티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한 조원희 작가는 수채 물감과 함께 과슈ㆍ사인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세련된 그림으로 우리를 불편한 진실 앞에 불러 세운다.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작업으로서 ‘이빨 사냥꾼’ 이전에도 ‘얼음 소년’ ‘혼자 가야 해’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를 통해 모든 존재가 평등하게 평화로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림책으로 펼쳐 내었다. 영화 ‘혹성 탈출’이 보여 준 ‘원숭이가 지배하는 행성’만큼이나 이 그림책이 보여 준 코끼리 이빨과 사람 이빨, 코끼리 사냥과 사람 사냥, 상아 공예품과 치아 공예품이 치환된 세계는 어떤 독자에게든 강렬한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이빨 사냥꾼’이 2017 볼로냐 라가치 픽션 부문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여전히 뒤숭숭한 새해에 처음 접하는 기쁜 일이다. 2014년에 출간된 이 그림책 속 ‘사람 이빨을 노리는 코끼리 사냥꾼’이 새삼 ‘상아를 노리는 코끼리 밀렵꾼’들을 놀라게 했을 리 만무하겠지만, 혹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코끼리 밀렵이 궁극적으로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유전자 풀(pool)을 이뤘다’는 지난 11월 영국 발 섬뜩한 뉴스가 심사위원들에게 이 그림책을 떠올려 주었을까. 이 그림책이 지상에서 영원히 코끼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촉발해 그런 연구 결과를 내놓게 되었을까.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책의 힘이다. 더구나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가 이야기하는 그림책의 힘이라면! (세계 상아 수요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2017년 안에 상아 매매를 금하고 상아 가공 공장을 폐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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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이 오른쪽 페이지로 넘어가는 순간, 그림책은 광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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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2
    조회수 : 890

    미디어 : 한국일보_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a82133b8770e428fa2a68c13608cf452

    필자 : 김장성 그림책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6.08.05

    종이책이 갈수록 위축된다. 백과사전을 비롯한 사전류는 거의 명맥이 끊어졌고, 문학서나 교양서 같은 읽을거리도 전자책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문자는 종이 위에서든 전자기기의 화면 위에서든 동일성을 잃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모든 책이 전자책이 되어도 끝까지 종이책으로 남을 것이 있으니, 바로 그림책이다. 커다란 책, 조그만 책, 기다란 책, 높다란 책, 구멍이 뚫린 책, 접었다 펼치는 책, 책장의 앞뒷면으로 그림이 연결된 책…. 그림책은 형식 자체가 내용의 일부를 이룬다. 지혜로운 작가들은 종이책의 그 물성을 질료로 삼아 그림책 예술만의 표현적 가능성을 실현한다. ‘아무도 지나가지 마!’도 그런 책이다.

    종이를 접어 묶은 것이 책이니, 책에는 반드시 한가운데 접힌 부분-판심이 있다. 이 책은 판심을 모티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속표지에서 말 탄 장군이 병사에게 명령한다. “이제부터 너는 꼼짝 말고 아무도 못 지나가게 지켜!” 장군이 지키라는 것은 나라도 백성도 아닌, 고작 판심의 오른쪽 지면. 까닭도 대단치 않다. 자신만이 그곳의 주인공이고 싶기 때문. 충직한 병사는 꼼짝 않고 그 경계를 지키며 소리친다. “멈춰요! 여기서부터는 누구도 오른쪽으로 지나갈 수 없어요.” 지나가려던 사람들이 정체를 이룬다. 저마다 지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건만, 병사가 지키는 이유는 단 하나, 장군의 명령이다.

    정체는 극에 이르고 불만은 고조된다. 명분 없는 병사 또한 말문이 막힌다. 그때 숨통을 틔우는 것은 역시 아이들이다. 두 꼬마가 갖고 놀던 공이 경계를 넘어간 것. “군인 아저씨, 우리 공이….” 어찌 동심을 짓밟으랴. “그럼… 빨리 지나가세요. 이번 한 번만….” 아이들이 먼저 경계를 넘어서고 어른들이 뒤따른다. “어서 지나가세요. 하지만 우리끼리 비밀로 해요.” 그때 장군이 나타난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랬잖아!” 부하들에게 소리친다. “저 녀석부터 당장 잡아!” 하지만 군중이 가만있지 않는다. “누구 맘대로!” “그는 우리의 영웅이야!” “이 책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부하들도 합세한다. “야호!” “만세!”

    자유로운 군중은 이미 오른쪽 지면마저 떠나갔는데, 홀로 남은 장군만이 분개하여 전형적인 ‘꼰대’의 대사를 읊조린다. “어리석은 것들 같으니라고! 지금 이 꼴이 대체 뭐야…. 아주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구나!” ‘난동’의 흔적을 바라보며 한탄한다.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겠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정말로, 그는 여전히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

    종이책의 좁다란 판심 하나가 오만과 독선의 권력이 멋대로 세운 거대한 차벽으로 변하더니 가로 40여㎝, 세로 20여㎝짜리 지면을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곳에서 요지부동인 차벽이 무너지고 광장은 통행의 자유를 되찾았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던 일을 가능케 한 건 동심을 담은 종이책-그림책의 힘이다. 그래서 실제로 달라진 게 무어 있느냐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체 누구인지 생각해 본 사람들이 생겼다. 적어도 이 책을 본 사람만큼은. 모든 책이 다 사라진다 해도 끝까지 남아야 할 책이 있으니 바로 그림책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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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것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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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조회수 : 799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c8f55feff21649e9b7bfaf045be33cfa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09.21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펭귄 로이와 실로가 살았다. 둘은 언제나 같이 걷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헤엄치고, 서로 다정히 목을 비벼대었다. 사랑하는 사이. 사랑하므로 둘은 가족을 이루고 싶었다. 돌멩이를 모아 둥지를 짓고, 밤이면 둥지에서 다정하게 잠을 잤다. 여느 펭귄 부부들처럼.

     

    그러나 둘에게는 여느 부부처럼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알을 낳는 일. 그들은 동성이었다. 수컷 로이와 수컷 실로는 알처럼 둥근 돌을 가져다 품어 보았다. 번갈아 자고 일어나 품고 헤엄치고 돌아와 품고, 몇날 며칠을 품고 또 품었다. 하지만 돌멩이는 돌멩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아닌 사람, 사육사의 마음이 움직였다. ‘둘은 서로 사랑하나 봐. 가족을 이루어 아기를 키우고 싶어 해.’ 사육사는 종종 부화에 실패하는 다른 펭귄 부부의 알 두 개 중 하나를 로이와 실로의 둥지에 넣어 주었다.

     

    여느 부모처럼 로이와 실로도 정성이 지극했다. 둘은 알이 고루 따뜻해지도록 이리저리 굴려가며 아침에도 품고 밤에도 품었다. 점심 먹을 시간에도 헤엄칠 시간에도 저녁 먹을 시간에도. 그 달이 시작되던 날, 그 달이 끝나던 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날에 품고 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끼가 깨났다. 둘만의 아기. 로이와 실로는 아빠가 되었다. 사육사가 말했다. “아기 이름을 탱고라고 짓자. 혼자서는 출 수 없는 춤.” 두 아빠가 한 아기를 정성으로 키웠다. 배가 고프면 무슨 소리를 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제 부리에서 먹이를 꺼내 먹여 주었다. 밤에는 꼭 안아 재우고, 둥지를 나올 만큼 자라자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동물원을 찾은 사람들은 여느 펭귄 가족과 다르지만 같은 이 가족을 보며 외쳤다. “장하다, 로이!” “장하다, 실로!” “만나서 반가워, 탱고!”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실제다. 1998년부터 7년 동안 로이와 실로는 부부로 살면서 딸 탱고를 키웠다. 이 나라 동물원에서였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사랑을 응원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니까.  그런데 동성 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랑을 저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감을 검증하는 자리에서건 법관을 살펴보는 자리에서건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종주먹을 대며 혐오의 불씨에 부채질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혐오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동성애는 고래류, 영장류를 비롯한 ‘자연’의 수많은 종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된다. 동물들이 섭리를 어기는 걸까? 동성애를 저주하는 이들이 떠받들곤 하는 미국조차 두 해 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어째서 그들은 미국의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배치해 달라’는 구걸을 할지언정, 미국의 법률은 모른척하는가?

     

    본디 그러한 것-그렇게 생겨난 것을 ‘자연’이라 하고, 사람이 만든 것-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을 '인위'라 부른다. 차별, 전쟁, 핵무기, 4대강 사업, 국정 농단 등이 후자에 해당하고 강, 산, 바다, 꽃, 나무, 사랑 등이 전자에 든다. 찬반은 인위에 국한되는 행위다. 강과 산을, 꽃과 나무를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가?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내버려 두라. 센트럴파크의 사육사처럼 돕지는 못할망정 패악을 부릴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일뿐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 조회수 9693
    • (비룡소 창작그림책-053 )
    • 그림작가 정진호
    • 글작가 정진호
    • 페이지 44
    • 출판사 비룡소
    • 발행일 2016-06-02
    • 시리즈 비룡소 창작그림책
    • 주제어
    • 연령별 5~6세
    • 수상내역
    • 2018 볼로냐라가찌상 코끼리가 사람을 사냥? 뒤집어 생각해 본 불편한 진실 [이상희/한국일보 20170225]
    • 2016 비룡소황금도깨비상 군중이 오른쪽 페이지로 넘어가는 순간, 그림책은 광장이 되었다
    • 2016-06-23
    그림책 자세히보기
    우리가 보는 세상 과연 하나일까… 다양한 관점의 존재 일깨워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4
    조회수 : 831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24010327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06.24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눈으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바라보는 지점을 바꾸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질까. 똑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면 그중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는 세상은 과연 하나일까.


    '관점'이라는 말의 의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에서 확립되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고정된 관점에서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동일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멀리 있을 때는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을 때는 크게 보인다. 건축에서 사용하는 투시도도 관점을 사용한 드로잉이다. 투시도를 보면 실제 집을 지었을 때 어떻게 보일지 미리 알 수 있지만 그 뒷면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사물의 반대쪽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앎은 시각에 얽매여 있다. 그렇다면 관점을 이동해보면 어떨까.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벽'의 정진호 작가는 꾸준히 '보다'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전작 '위를 봐요'(현암사)에서는 사고로 다리를 잃고 고층 아파트 발코니 똑같은 자리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며 살아가는 외로운 어린이가 등장한다. 오직 땅만 바라보며 걷느라 바쁜 어른들은 이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한 소년의 제안으로 위를 바라보게 되고 그 시선의 전환이 계기가 되어 장애 어린이와 이웃들은 따뜻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벽'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놓인 두꺼운 벽은 그 너머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벽은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해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벽의 이쪽에서는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저쪽에서는 '밖을 내다보는' 것이고 볼록하다고 생각했던 벽이 건너편에서 보면 오목한 경우도 있다. 보는 위치에 따라서 왼쪽, 오른쪽조차 달라진다. 건축을 전공했던 작가는 간결한 몇 개의 선과 면을 활용해 늘 변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공간을 뒤흔든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세상에는 다채로운 관점이 존재하며,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벽의 뒤편에서 바라보는 세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간의 상대성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의 상대성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인 것이다. 물리적인 벽과 창문과 복도에 관한 투시도는 우리 마음의 다양성을 비추는 투시도가 된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 노란 벽과 파란 벽이 만나는 모퉁이에서는 그동안 전혀 다른 믿음을 갖고 벽을 따라 걸어왔던 두 어린이가 마주친다. 그들의 진짜 앎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둘의 대화에서 비롯될 것이다. 벽을 둘러친 것처럼 타인의 관점을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소통 불능의 꽉 막힌 어른들에게도 권한다. 2016년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이다.​

     

      • 조회수 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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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달콤 내일은 씁쓸?… 내 마음에 달렸다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31
    조회수 : 917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722010327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06.24

    책을 읽는 사람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보이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비가 오는 장면을 읽을 때는 책 안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맞춰 주인공이 된 것처럼 책에 적힌 문장을 따라 “야호! 비다”라고 말해본다. 어른들은 이 즐거운 과정을 음소거할 줄 알지만 어린이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는 걸 좋아한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음성 지원 현상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오디오파일의 반복적 소리가 따라잡기 힘든 생생하고 독창적인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나를 위한 특별한 성우가 된다.

    ‘야호! 비다’는 책 속의 문장에 나만의 억양을 입혀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림책이다. 골목에 비가 내리고 어떤 성난 눈썹의 할아버지는 “비가 오네!”라고 말하고 옆집 아이는 활짝 웃으며 두 손 들고 “비가 오네!”라고 말한다. “비가 오네!”라는 문장은 똑같지만 독자는 그림 속 두 사람의 말을 전혀 다르게 소리 내어 읽는다.

    성난 눈썹 할아버지에게 비 오는 아침은 나쁜 소식의 시작이지만 옆집 어린이에게 비 오는 아침은 비옷 입고 개구리 놀이를 하기 좋은 멋진 기회다. 이 그림책은 ‘흐린 날 또는 맑은 날’ 중에 오늘이 어떤 날이 될 것인지는 내 마음의 방향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설탕을 뺀 쓰디쓴 커피 같은 날을 보낼 것인지, 달콤한 쿠키 같은 하루를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보라고 한다.

    작가 에즈라 잭 키츠는 검은 피부의 피터를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그림책 속의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사람이다. 이 책은 ‘에즈라 잭 키츠 상’의 수상작답게 인물들의 피부색은 물론 머리카락, 눈동자와 입술까지 서로 다른 빛깔로 되어 있다. 장애인과 반려견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아빠, 피부색이 다른 커플들이 이웃으로 스쳐 간다. 세계는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며, 수만 가지 감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의 공동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루는 엉망이거나 최고인 것만은 아니고 그 사이에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행복과 기쁨이 숨어 있다. 

     

      • 조회수 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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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이 행복한 선물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4
    조회수 : 1010

    미디어 : 레디앙

    원문 : http://www.redian.org/archive/101095

    필자 :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등록일 : 2016.08.01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참 무더운 여름입니다. 이따금 스쳐가는 빗방울 덕분에 습도마저 높습니다. 모두 시원한 곳을 찾아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정말이지 텔레비전 뉴스만 보고 있으면 한국사람 모두가 여름휴가를 떠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름휴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자주 잊고 살아갈 뿐입니다.

     

    너무 힘겨워서 휴가를 갈 수 없는 할머니

    여기 혼자되신 할머니가 있습니다. 다행이 할머니 곁에는 귀여운 강아지 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름 역시 덥습니다. 강아지도 덥고 할머니도 덥고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 나옵니다. 때마침 반가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어린 손자와 며느리입니다. 여름휴가로 바다를 다녀온 손자는 할머니와 함께 다시 바다로 놀러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꼬마의 엄마는 할머니가 너무 연로하셔서 바다에 갈 수 없다며 꼬마를 달랩니다. 그러자 꼬마는 할머니에게 바다 소리가 들리는 소라껍데기를 선물합니다. 자신이 바다에서 주워온 소중한 보물을, 이제는 너무 힘겨워서 바다에 갈 수 없는 할머니에게 기꺼이 선물합니다. 꼬마가 할머니에게 드리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참 기특한 아이입니다.

    마법의 소라껍데기

    손자와 며느리가 가고 나니 집에는 다시 할머니와 강아지 그리고 소라껍데기 뿐입니다. 그런데 소라껍데기에서 뭔가 나옵니다. 꽃게입니다. 이윽고 강아지와 꽃게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꽃게가 다시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강아지가 자기 몸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 것입니다. 할머니는 강아지가 사라져서 당황합니다. 다행이 곧 꽃게가 소라껍데기에서 나오고 잇달아 강아지도 돌아옵니다. 손자가 선물해준 소라 껍데기는 그냥 소라껍데기가 아니라 어디론가 다녀올 수 있는, 마법의 소라껍데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손자가 선물한 소라껍데기는 도대체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꽃게와 강아지가 다녀온 곳은 어떤 곳일까요?

    상상이 선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토끼 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고요한 나라를 찾아서』에서는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고요한 나라로 여행을 다녀옵니다. 동화나 그림책에는 이렇게 특별한 장치를 통해 환상 여행을 다녀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환상 여행이라는 상상의 세계가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행복을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라껍데기는 할머니의 무덥고 답답한 현실과 바다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상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마법의 통로입니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버거운 사람에게는 자유롭게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상상이 행복한 선물이 됩니다. 독자들은 그림책에서 할머니가 소라껍데기를 통해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와 함께 행복에 빠집니다. 물론 실제로는 할머니의 상상입니다. 손자가 주고 간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 할머니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법의 소라껍데기’를 어린 손자가 할머니에게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손자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냥 평범한 소라껍데기를 ‘마법의 소라껍데기’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올여름 가장 시원하고 사랑스런 여름휴가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보면서 저는 슬픔과 기쁨을 모두 느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다니고 싶을까 생각하니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여름휴가를 다녀온 것 같아서 고맙고 기뻤습니다. 인간에게 즐거운 상상이 중요한 까닭은 사람의 행복이 마음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이 즐거워도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을 해도 행복합니다. 영혼의 존재인 인간에게 현실과 상상은 어쩌면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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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가 [최정선/한국일보 201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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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7-18
    조회수 : 56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3480db61773b4a8fa16249033d30ba49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7. 06

     

    수박을 샀다. 복수박이니 애플수박이니 하는 앙증맞은 수박들이 눈길을 끌기에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수박은 큼지막해야 제 맛이다. 축구공만한 진초록 수박들을 둘러보다가 때깔 고운 놈 몇 개를 골라 두들겨도 보고 꼭지 색깔도 살펴보고 무게도 가늠해보았다. 그래 봤자 다 시늉이다. 그게 그거 같아서 결국은 아무거나 집어왔으니까. 잘 익은 수박은 칼을 대자마자 달큰한 향기를 내뿜으며 쩍 갈라진다. 까만 씨가 점점이 박힌 분홍빛 속살이 보기만 해도 달다.

    앙통은 수박 농사를 짓는다. 밤낮없이 수박밭에 애정과 정성을 쏟는다. 씨알 굵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박이 빈틈없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수박밭. 이것이 앙통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그런데 이 완벽한 수박밭에 도둑이 들었다. 수박 한 통이 사라진 것이다. 밭 한복판에 이가 빠진 것처럼 구멍이 났다.

    앙통의 마음에도 구멍이 났다. 고작 수박 한 통을 잃었을 뿐인데, 여전히 수박밭은 탐스런 수박들로 가득한데, 어차피 수확해야 할 텐데, 앙통은 사라진 수박과 수박밭에 옴폭 팬 자국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허전하고 슬프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악몽도 꾼다. 도둑맞은 수박이 수박밭 옆 목화밭으로 굴러가는 꿈, 창고의 생쥐들이 수박을 와작와작 먹는 꿈, 수박을 훔쳐간 범인이 앙통 자신인 꿈. 사라진 수박 한 통이 영혼을 짓누르고, 사라진 수박 한 통에 밭 가득한 수박들이 빛을 잃었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잘 익은 수박처럼 달콤하고 싱그러운 첫인상과는 달리 매우 진지하다. 수박밭 한복판에 침통한 얼굴로 서 있는 주인공은 마치 수박이 사라진 빈 자리를 제 몸으로 메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집채만큼 커진 수박들, 그 사이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주인공, 저녁놀 지는 하늘에 눈동자처럼 떠 있는 수박, 수박이 흘리는 붉은 눈물, 도둑맞은 수박이 일으키는 홍수, 줄무늬 진 하늘과 뒤엉킨 그림자, 수박 속에 씨처럼 박혀버린 앙통….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림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한가. 어찌하여 이토록 쉽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가.

    더 이상 기쁨도 자랑도 자부심도 아닌 수박밭에서 앙통은 해방될 수 있을까. 그는 삶의 기쁨과 열정과 보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수박을 한 입 베어 문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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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따라다녀야 해”… 강아지와 나누는 ‘우정’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4
    조회수 : 855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160805010328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08.05

     

    그림책은 어디까지 확장과 변형이 가능할까.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만나 제3의 의미를 창조해 낸 예술품이면서 최종적으로는 책의 형태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출판물에 속한다.

     

    다른 출판물에 비해서 산업과 연관성도 높다. 책에서 캐릭터와 일러스트만 별도로 분리하여 아예 다양한 상품으로 제작하기도 하는데 서점보다 문구점에서 더 먼저 인기를 얻는 경우도 흔하다. ‘피터 래빗’, ‘리자와 가스파르’, ‘바바빠빠’ 같은 인기 캐릭터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꼭 원작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서사를 알고 보면 캐릭터가 더욱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이리스 드 무이도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프랑스의 전방위 그림책 작가다. 그는 ‘엘르’, ‘보그’ 등과 일하는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인데 그림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신의 그림책 속 캐릭터로 옷과 가방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여 백화점 디스플레이에도 참여한다. 지난해에는 일본 교토(京都)에 머물면서 만화와 협업을 벌이고 교토 국제 만화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시리즈인 ‘뽐뽐’ 가운데 세 권, ‘내 강아지 뽐뽐’, ‘뽐뽐의 사과’, ‘잘 자, 뽐뽐’이 번역 출간됐다. 귀여운 강아지와 나누는 우정을 그린 유아 그림책으로 어린이의 욕망을 솔직하게 나타낸 짧고 직설적인 문장과 선명한 선의 흐름이 매력적이다. ‘미피’나 ‘키티’ 계열과 비교할 때 도덕과 전형성에 얽매이지 않은 서사는 훨씬 현대적이고 선과 색과 인물의 표정은 한결 자유롭다.

    주인공은 강아지 뽐뽐에게 ‘어딜 가든 나만 따라다녀야 해’라고 명령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유아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낸 부분이다. 힘들게 사과를 따고서 뽐뽐에게는 한 입도 나눠주지 않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강아지에게 나눠주는 결말’이 어른의 것이라면 ‘강아지는 사과를 안 먹는다’고 주장하면서 내 사과임을 고집하는 이 이야기는 온전히 어린이의 것이다.

    유아는 복잡한 세계 안에서도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우리는 나를 알게 되고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뽐뽐 시리즈’는 그런 그들에게 딱 맞는 그림책이다. 물론 캐릭터를 사랑하는 어른들에게도 이 다정하고 투명한 그림은 열렬한 구애의 대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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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닳은 지우개·사라진 나무… 철학책 못지않은 여운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08-23
    조회수 : 900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160819010327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08.19

    그림책은 세계의 어린이들이 평등하게 교감하는 통로다. 글이 적어서 번역이 수월하고 문맹인 어린이도 어느 정도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색과 형상은 각 지역, 여러 공동체의 특색 있는 문화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의 어린이가 자라면서 느끼는 보편적인 경험과 가치를 담고 있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게 된다.


    책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작가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와 마달레나 마토소의 작품으로 라틴 문화권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무늬,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표지는 느긋한 리스본의 해변에서 시작된다. 누워서 몸을 그을리는 피서객들은 저마다 피부색도 다르고 이 중에는 비키니 상의 없이 편안히 엎드린 여성도 있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전부 다 책을 손에 들고 있다. 면지의 기하학적인 타일 무늬에서는 이 지역과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슬람 문화권의 모자이크가 떠오르고 위쪽에서 기어오는 빨간 달팽이는 이 책이 앞으로 보여줄 느리지만 아름다운 시간의 서사를 예고한다.

    글은 어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사랑할만한 한 편의 시다.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라는 간결한 문장에서 출발해 냄비 속 양파가 부드러워지고 카펫이 닳고 과자가 눅눅해지고 책의 표지가 바래고 타이어가 닳을 때까지 시간의 진행과 함께 달라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바뀌는 것 중에는 우리의 감정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촌스럽던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멋있던 것이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토록 어려웠던 일이 언젠가부터 쉬워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문득 우리는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달라져도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인생은 여행길이며, 줄을 서면 내 차례가 오고, 친구들은 변함없이 내 곁에 있다는 든든한 진리를 말이다.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작은 그림책 한 권이 존재와 시간에 관한 철학책 못지않은 여운을 준다.


    책의 그림은 글만큼이나 함축적이다. 닳아 없어진 지우개는 가루로만 남아있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나무는 공사 현장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모닥불이 마지막까지 온기를 지니는 것처럼 남아야 할 것은 반드시 우리 곁에 남는다. 책을 덮기 전에 면지의 달팽이는 어디까지 갔는지 꼭 찾아보기 바란다. ​

     

      • 조회수 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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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센터, 사진관, 모자공장… 모퉁이 작은 집 30년 풍경 [한국일보 20161111]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1-14
    조회수 : 67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s://www.hankookilbo.com/v/7d0f0feb6f0f4d4196c3626523c86496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6.11.11

     

    아귀다툼 비명 겹겹 거짓 헛 맹세/ 뒤숭숭 어두컴컴 퀘퀘한 집/ 그 집에서 종신토록 누추하게 산다/ 살 수밖에 없다는 악몽/ 악몽에 늘어붙은 어른들 팔을 질질 끌며 흔들어 깨우며/ 촛불 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람이 통하는 맑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도둑이 들 수 없는 환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두드리는 이마다 활짝 문 열리는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온종일 귓속에서 소리치는 아우성을 받아 써본다. 죽은 아이들 소리, 살아보자는 아이들 소리가 웅웅거린다.

     

    ‘국가는 국민의 집이다’. 눈길 둘 데 없이 누추한 여기저기를 짚어보다가 떠오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끄덕이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북유럽 국가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던 연전의 독서에서 인상적인 이름으로 남아있는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 2차 세계대전 이후 그지없이 황량했던 스웨덴을 평등하고 조화로운 복지국가로 만들면서 초지일관 외쳤던 슬로건이었다. 국가는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고…. 밝고 맑고 따뜻한 집, 좋은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가 만드는가?

     

    김선진이 만든 그림책 ‘나의 작은 집’은 ‘오래되고, 낡고, 소박한’ 집 한 채가 거듭 새로이 변신하는 역사를 담아낸다. 사과나무 언덕에 서있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작은 집이 믿을 수 없는 격변을 겪으며 고가도로 밑 누옥이 되는 우여곡절 끝에 원래 자리와 흡사한 고즈넉한 시골로 돌아간다는 그림책의 고전 ‘작은 집 이야기’가 산업혁명 전후의 변화라는 거대담론을 품고 있다면, 이 그림책은 그림만큼이나 세세하고 담담하게 30년쯤 경과하는 시간의 풍경을 조근조근 속삭인다.

     

    연립주택가 모퉁이의 작은 집이 ‘삼일 카센터’가 되었을 때, ‘초원 사진관’이 되었을 때,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독거노인 할머니의 집이 되었을 때, 청년 창업가들의 ‘M모자공장’이 되었을 때, 그리고 한동안 텅 비어 잿빛 폐가가 되어버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흥미로움 이상이다. 얼핏 다정하고 따스하게 여겨지는 이 그림책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깊이를 보여주면서 곧 ‘좋은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건넨다.

     

    그렇다. 사람이다. ‘나의 작은 집 이야기’는 어느 날 ‘낡고 작은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아가씨에 의해 새 날을 맞으면서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겹겹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페인트칠을 하고 창에 커튼을 늘어뜨리고 선반을 달고 화분을 놓는 이 아가씨는 화가로서, 작업대에 물감과 붓을 놓는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책꽂이에 책을 꽂고, 선반에 여행 기념품을 늘어놓고, 커피를 끓이고, 벽에 그림을 걸고 ‘작은 전시’ 포스터를 붙여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아래위로 펼치는 독특한 공간을 구성하여 거듭 바뀌는 집 주인의 일과 도구로써 작은 집 내부를 담기도 하고, 주인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연립주택가 모퉁이 작은 집의 외부 전경을 담기도 한다. 집 주인들이 늘 문을 열고 나와 저마다의 열망을 가족과 이웃과 고양이를 포함한 공동체와 나누고 즐기는 국면은 특히 귀하다. 좋은 집은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을 잉태하여 바깥으로 나른다는 것을, 사람이 집이고 집이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