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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잡으면 흔들리는 너도 균형 잡을 수 있단다 [소윤경/한국일보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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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1-10
    조회수 : 46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b921a968c92945228eace3cb33c651c6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6.12.16

     

    아기가 이제 막 엄마의 손을 놓고 걸음마를 시작한다.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을 안고 세상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아기가 걷게 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양극이 존재한다.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 사랑과 증오, 강함과 약함, 삶과 죽음….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루어진 세상에서 균형을 잡아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머리에 원뿔을 얹은 소년이 팔을 벌리고 시소 끝에 서있다. 곧 큰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혼자 균형을 잡는 연습 중이다. 온통 신경을 집중하면서 세모, 네모, 원과 사다리에서도 위태롭게 서있다. 마침내 떨리는 마음으로 서커스의 가장 높은 탑에 오른다. 발 밑으로는 수많은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소년을 올려다보고 있다. 소년이 힘차게 공중그네를 타기 시작한다.

     

    맞은편에서도 한 소녀가 공중그네를 타고 다가온다. 소년과 소녀는 공중에서 서로 손을 맞잡는다. 이제부터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시작한다. 둘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더 다채로운 도형들 위에서 함께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때때로 서로를 탓하며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절대 눈을 떼지 않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제 공연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시소에 크고 작은 동물들과 서커스 단원들이 하나 둘씩 조심스레 올라간다. 코끼리부터 작은 원숭이, 모양도 크기도 제 각각인 도형들도 별달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는 한 균형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커튼이 걷히자 멋지게 완성된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들리는 듯하다.

     

    모든 작품은 무엇보다 작가자신을 담는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유준재 작가가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과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소에 올라선 이들은 치우침이 없도록 타인을 배려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내가 떠받쳐야 할 세상이 힘겹지만 나를 떠받치고 있는 더 많은 존재들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선 이는 저절로 홀로 서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 곳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맨 아래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에 짓눌린 채 인내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시소에서 내려오고 있다. 세상의 균형을 무시하는 이들을 더 이상 떠받쳐 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균형은 깨지고 피라미드는 무너졌다. 또다시 새롭게 쌓아 가야 할 피라미드에서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서로를 살피면서 아름다운 균형을 맞춰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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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 덜컹… 힘은 없지만 ‘진짜’인 삶을 담은 그림책 [김지은/문화일보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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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2-14
    조회수 : 404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1104010327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11.04

     

    아침에 일어나면서 생각합니다. 이렇게 힘든데 오늘도 일어나서 가야 하는 걸까. 때 이른 찬바람에 날은 춥고 밖은 어둡고 몸은 한없이 무겁습니다.   어젯밤에 들은 높은 사람들의 말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오갑니다. ‘모른다, 만난 적 없다, 모두 가짜’ 같은 낱말이 새로고침한 뉴스 창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루는 진짜입니다. 하루라도 그냥 누워 있으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않으면 그날의 일당이 나오지 않는, 내 자리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무섭도록 생생한 진짜입니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야 합니다.

     

    ‘나는 지하철입니다’는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늦잠 자고 싶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어난 우리 진짜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날마다 뱅뱅 도는 순환선,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자신의 객차에 올라탄 사람들의 삶을 관찰해서 들려주는 형식입니다. 일곱 명의 이름이 나오고 일곱 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오르내립니다. 처음 탄 사람은 완주 씨입니다. 학창시절 이어달리기 선수였던 완주 씨는 예쁜 딸을 한 번 더 보고 나오느라 출근길에 늘 꼴등을 다툽니다. 시청역에서 올라탄 윤복순 씨는 ‘바당’에서 태어나 여섯 식구를 먹여 살린 제주 해녀입니다. ‘문어영 전복 잡앙’ 서울 딸집에 ‘맛 존 밥’ 차려 주러 왔습니다. 

     

    구의역에서 탄 재성 씨는 맞은편 신발만 봅니다. 아저씨는 평생 구두수선을 했거든요. 학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살지만 성적도 오르락내리락해서 잔뜩 움츠러든 나윤이는 강남역에서, 임용고시학원에 다니면서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아홉 이도영 씨는 신림역에서 탔습니다.  모두 고단하지만 옆자리 아기에게 팔을 빌려주고 바쁘지만 전화기 너머로 안부 인사도 전합니다. 그들이 어떤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디디고 걷는 중인지 하나하나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책 너머로 최선을 다한 하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효은 작가는 선이 두드러지지 않는 고운 먹물 그림으로 주인공과 독자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일곱 식구 복작복작한 집에서 자랐다는 이 젊은 작가는 믿기지 않는 넓은 품과 깊은 시선을 보여줍니다. 별책 스토리북에는 일곱 주인공의 못다 한 얘기가 들어 있습니다. 작가의 동생이 만든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은 객차의 속도감까지 더해 새로운 감동을 줍니다.

     

    어린이 독자라면 숨바꼭질의 재미가 있겠죠. 졸다가 내릴 곳을 놓친 승객을 찾아보세요. 어른 독자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 겁니다.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지금 꼭 필요한 그림책입니다.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지하철 마디마디 삶을 싣고 달린다 [최정선/한국일보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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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2-14
    조회수 : 37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783afa16ecbe4fff90b9675c1dc48632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6.11.25

     

    지하철은 도시의 혈관이다. 도시의 살가죽 밑을 파고들며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뻗어나간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톨처럼 사람들은 지하철에 실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만나고 헤어지고 일하고 공부하고 울고 웃고 꿈꾸며 살아간다.  김효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읽는다. 하나인 듯 이어진 하늘과 강을 가르며, 좌우로 나뉜 땅을 하나로 이으며 한강 다리 위 열차가 달린다.

     

    “나는 오늘도 달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시원스런 사선 구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람들이 땅속으로 내려간다. 개찰구를 지나는 사람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다시 책장을 넘기니 화면 가득 먹빛, 땅속 어둠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한 줄기 빛처럼 열차가 달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 마디마디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에 다다른다. 지하철이 덜컹덜컹 몸을 뒤챈다. 문이 열린다. 허겁지겁 달려온 샐러리맨, 비릿한 냄새 풀풀 풍기는 할머니, 갓난아기에 기저귀가방에 개구쟁이 아들까지 챙기느라 정신 없는 아기 엄마, 구부정한 어깨의 중년 아저씨,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여학생, 길 잃은 아이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청년….

    어제도 오늘도 그냥 지나쳐버린 익숙한 풍경 같은 이들을 작가가 불러 세운다. 나직하게 몰아 쉬는 한숨, 입꼬리에 남은 희미한 미소, 벌개진 목덜미를 쓸어 내리는 손, 비린내 밴 보따리에서 비어져 나오는 마음, 불거진 힘줄에 서린 자부심이 눈 밝은 작가의 조곤조곤한 글에, 수없이 거듭된 드로잉의 결과였을 성실한 그림에 담겨 생생하게 살아난다.

     

    딸 바보 아빠 완주씨, 제주 바다에 한평생을 묻은 복순씨, 어느새 제 이름조차 낯설어진 연우 엄마 유선씨, 발끝에서 인생을 읽는 구두수선공 재성씨, 고민 많은 취업준비생 도영씨가 우리 앞에 서 있다. 풍경이 아닌, 그저 승객이나 시민이라는 표백된 개념이 아닌, 피가 돌고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이 각자 제 몫의 인생을 끌어안고 지하철을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가득 싣고 지하철이 달린다. 일곱 살 아들 생일에 사가는 고소한 치킨과 흰 셔츠에 밴 시큼한 땀 냄새와 졸음에 겨운 눈꺼풀을 싣고 달린다. 토요일이 오면 지하철은 촛불을 챙겨 들고 광장으로 향하는 가슴 뜨거운 이들을 제 품에 그득 안고 달릴 것이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덜컹덜컹 몸을 힘껏 흔들 것이다. 이번 역은 시청, 시청역. 이번 역은 광화문, 광화문역. 깜박 잠들었던 이들은 이내 깨어나 광장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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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저녁에 만난 일상 예술 [이상희/한국일보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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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33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fbeba417f650412892f8d219d67cada1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 7.20

    몸이 마른 할아버지가 쪼그려 세운 두 무릎에 턱을 얹고 그림을 그린다. 무념무상, 접의자 위 유리컵에 꽂힌 국화 비슷한 쑥갓 꽃 그리기에 푹 빠진 모습이 아이 같다.
    꼭 이런 모습으로 작업했던 화가 장욱진이 떠오른다. ‘쑥갓 꽃을 그렸어’의 표지에는 골똘히 쳐다보고, 그리고, 지우고, 다시 쳐다보고, 다시 그린 몰입의 시간이 흐뭇하게 담겨있다. 일흔두 살에 붓을 들어 아흔두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수백 점 그림을 남긴 엠마 스턴 같은 성취를 엮은 그림책일까?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그림 그리는 할아버지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이 그림책은 유춘하, 유현미 두 사람이 함께 만들었다. 유현미는 영문학 전공의 화가 겸 그림책 작가로, 유춘하의 셋째 딸이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흔 살 아버지를 부추기고 격려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아버지의 풋풋한 그림을 갈무리하고, 그림 그리면서 흘린 아버지의 말을 받아 적고,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이며 손주와 함께 놀고 쉬는 모습을 그려 엮는 데에는 창작 이상의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예술적 감흥을 가까운 이와 공유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을까.

    첫 장면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손녀가 쓰던 몽당 크레파스며 새 스케치북을 멀찌감치 밀쳐두고 딸의 권유가 성가시다며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나이가 구십이라 걷기도 힘든데, 누워서 쉬고만 싶은데, 그림이라곤 전혀 모르는데, 라며 투덜댄다. 그러나 토끼와 새와 생쥐를 크레파스로 그려보고 주말농장에서 주워온 자두를 물감으로 그려본 다음엔 이 낯선 농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표지의 그 쑥갓 꽃 그리기에 이르러서는 자발적 연구 모드로 자신감을 더하고, 어항 속 물고기 그리기 과제에도 호기롭게 대응한다.

    이제 딸은 아버지와 그림 도구를 싣고 스케치 소풍을 떠난다. 경기 파주 반구정 마루에 앉아 멀찌감치 보이는 임진강과 송전탑을 그리는 할아버지의 옆뒷모습 그림, 그에 이어 펼쳐지는 할아버지의 그림과 그 장면에 담긴 텍스트, 눈물 어린 마음인 듯 뿌옇게 물감을 흘린 배경에 그린 기차 선로며 역이며 고향 사람들이며 철조망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딸의 프로젝트가 ‘아버지, 일상 예술을 즐기다’ 이상임을 진술한다. 아버지는 황해도 신천군 가산면 서정리 350번지 주소와 전쟁 때 두고 온 어머니와 돌쟁이 딸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 실향민, 기력 없는 몸이 이끄는 대로 그저 누워 있었다면 쓰라린 회한의 파도에 마음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이즈음 그림책 특화 문화도시 강원 원주를 비롯 경남 진주 · 제주 · 충남 부여 송정리 등 지역 곳곳의 그림책 예술 문화 단체들이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인생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쓰기도 어렵고 그림 그리기도 서툴지만, ‘글’ ‘그림’ 양손으로 기억을 길어 올리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얼마나 귀하고 유익한지 실감하게 된다. 그림책은 예술적 결과물이며 그에 깃든 삶을 보여주지만, 누구든 스스로의 인생을 담고 갈무리하기에 좋은 그릇이기도 하다.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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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을 따라, 파랑이 매혹적으로 펼쳐진 세계로... [이상희/한국일보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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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조회수 : 686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806363d4f31646c888fbe423b5ee3aa8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11.23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소년, 온몸이 파란 소년이다. 허공에서인 듯 저 세상에서인 듯, 오롯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본다.
    머리에 내려와 앉은 다홍빛 낙엽은 이승의 것인 듯 생생하다. 한지 느낌의 까슬한 종이는 여백이 많아서 한층 쉬이 손때가 타겠지만, 코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 그림책이 소장용 예술품이라는 뜻이다. 세로쓰기의 손 글씨체 제목 ‘소년’에 이어진 담백한 고딕체 저자 정보도 조촐하기 그지없다. 표지 그대로 한 폭 그림이다. 책상이나 창턱, 방안 어디에라도 기대어 놓으면 금세 둘레가 고즈넉해질 듯하다.

    표지를 열면 파랑 색면이 두 번 세 번 겹쳐진 면지가 출렁, 시야를 덮친다. 그 다음, 최소한의 정보가 점 찍힌 채 하얗게 비운 속표지는 ‘잠수!’라고 나직이 외치듯, 이 책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신호한다. 시작, 표지의 그 소년이 걷기 시작한다. 이제 독자는 주인공의 보폭대로 따라 걷는다. 다홍빛 낙엽이 소년의 어깨로 배로 떨어졌다가 다시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대기 속을 천천히 뒤쫓는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화면 위에서 읊조리는 시구를 배경음으로 듣는다. 소년이 데려간 곳은 연두빛 봄 이파리 분분히 흩날리는 벤치, 작은이(소인)가 되어 거기 누운 채 소년이 바라보는 하늘은 시구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를 성큼 뛰어넘는다.

    소년은 멍드는 법이다. 소년의 행보는 내면과 외부로 이어지며, 마침내 파랗게 멍든 바다 같은 슬픔에 잠긴다. 파랑의 장막을 찢고 나와 강물에 비친 자신을 수굿이 들여다보는 마지막 장면은 낯익다. 시인의 ‘자화상’ 한 구절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와 겹친다. 애써 흐름에 얽매이지 않는 시구와 그림, 장면 장면의 고유성이 강렬하고도 평화로운 시화첩이다. 자신이 매혹된 색깔 ‘파랑’을 마음껏 쓰고 절제하면서 윤동주와 시 ‘소년’을 구현한 이성표의 공로는 막대하다.

    윤동주는 이 땅에서 자라는 소년들이 처음으로 내면화하게 되는 시인이지 싶다. 이 나이에도 그 고귀한 이마와 서늘한 눈매의 초상, 생애와 죽음, 시편들 단어마다에 찍혀 있는 자의식의 통증을 맞닥뜨릴 때면 자신과의 싸움에 맹렬하던 질풍노도를 떠올리게 된다. 초중고 재학 중 내내 신종 플루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와 세월호 참사를 겪고 마침내 ‘수능 연기’까지 치른 주위의 ‘파란만장’ 99년생 소년들에게 선물하기에 좋겠다. 다양한 형식으로 여러 차례 열렸다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을 놓친 서운함도 이 그림책으로 달랠 수 있겠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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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깜한 밤골목 걷는 토끼 모녀… 무사히 귀가했을까? [김지은/문화일보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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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2-14
    조회수 : 757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111801032812000002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11.18

     

    미야코시 아키코의 그림책은 온통 흑백으로 된 세상이다. 그 세상 안 오직 몇 군데에만 선명하게 빛나는 색깔이 담겨있다. 작가는 색을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에 사용된 색은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심부름 가는 길에’에서는 눈 쌓인 숲길을 걷는 주인공의 털모자와 치마가 채도 높은 빨간색이었다. 독자는 언젠가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빨간모자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걱정과 달리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동물들의 화사한 디저트 파티에 합석하고 그 식탁 케이크 접시에서 독자는 또 한 번 달콤한 색의 향연을 맛본다.

     

    ‘태풍이 온다’에서는 모든 풍경이 무채색인 가운데 유리창 밖의 하늘만이 푸르게 반짝인다. ‘비밀의 방’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연한 초록색의 뜰이다. 흑백으로 그려진 ‘심부름, 태풍, 비밀’들이 현실의 암흑과 곤란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주의를 집중시키는 청명한 색깔은 작가가 바라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책에서 흑백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을 작가가 그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신작 ‘집으로 가는 길’은 문을 닫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식당도, 책방도 문 닫을 준비를 하는 깊은 밤, 엄마 토끼는 아기 토끼를 꼭 껴안고 골목을 걷는다. 어디선가 나직한 말소리가 들리면 살짝 긴장하기도 하고 열린 창문으로 다른 가족의 파티를 엿보기도 한다. 중간쯤 아빠 토끼가 마중을 나온다. 집에 돌아온 조랑말은 욕조에, 사슴은 스탠드 아래에서 하루의 남은 조각 시간을 누리는 장면을 보면서 독자는 차근차근 염려를 내려놓는다. 반전은 마지막 부분이다. 모두 집으로 오는 이 시간에 생쥐 부인이 밤기차를 탄다. 그는 집으로 가는 것일까. 집을 떠나는 것일까.

     

    집으로 가는 길도 흑백의 톤이 주조를 이루는 것은 여전하다. 도시의 검은색은 더 깊어졌고 토끼 모녀를 둘러싼 건물들은 그들을 위협하듯 즐비하다. 그러나 작가는 백열전구 같은 밝은 노란색으로 이들의 밤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려고 한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겁내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는 신호등처럼 검은 밤의 노란 불빛들은 다정하고 따스하다. 

     

    여자 아이가 되었든 토끼가 되었든 작품 속 어린이에게 거듭해서 빨간 옷을 입히는 것은 그들이 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위험에 노출된 존재인가를 확인시키는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둘러싼 밤은 언제쯤 끝날까.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 켜진 창문들처럼 우리에겐 같은 마음의 이웃이 있다. 오늘도 힘을 내야 하는 이유다.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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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 [이루리/레디앙 20161202]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2-14
    조회수 : 819

    미디어 : 레디앙

    원문 : http://www.redian.org/archive/105622

    필자 :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등록일 : 2016.12.02

     

    착한 제목, 더 착한 표지

     

    저는 착한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착하기만한 사람이 별로 매력이 없는 것처럼, 너무 착한 책도 매력이 없습니다. 그림책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는 제목부터 너무 착해서 별로 매력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표지는 손녀가 할머니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배경은 분홍색이고 좌우는 꽃으로 장식된, 그야말로 착하고 착한 그림입니다. 저한테는, 한마디로 참 매력이 없었습니다. 다행이 면지가 좀 흥미로웠습니다. 책장처럼 칸칸이 나누어진 장식장이 있고 장식장 칸마다 독특한 물건들이 보입니다. 호박, 향수병, 머리빗, 장난감 말, 선글라스, 선물상자, 편지묶음, 사진들, 구두, 눈 내리는 유리구슬, 소라껍데기, 반짇고리, 결혼사진, 숟가락. 이제 이 물건들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할머니 주름살

     

    주름살에 기억이 담겨 있다고?

    오늘은 할머니 생일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손녀이자 주인공인 꼬마의 눈엔 할머니가 좀 슬퍼 보이기도 하고 놀란 것도 같고 걱정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꼬마는 할머니에게 왜 그런지 묻습니다. 할머니는 주름살이 많아서 그렇게 보일 거라고 합니다. 꼬마는 할머니에게 주름살이 걱정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니라며, 주름살 속에는 할머니의 모든 기억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꼬마는 할머니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주름살에 기억이 담겨 있다고요? 저도 못 믿겠습니다. 꼬마는 할머니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로 합니다. 우선 할머니 이마 가장자리 주름에 어떤 기억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가 커다란 수수께끼를 풀었던 이른 봄, 그 아침’이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대답을 듣는 순간, 저 역시 할머니가 품었던 커다란 수수께끼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펼쳐 봅니다. 와우!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옵니다. 아무런 글도 없는 한 장의 그림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봄 그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품었던 커다란 수수께끼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때 이마에 주름이 생겼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림으로 사로잡다

     

    이 한 장면이 그림책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착하고 별로 매력 없는 책에서 완벽한 매력덩어리 책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는요?”
    “여기에는 내가 가 봤던 최고의 바닷가 소풍이 담겨 있지.”
    -본문 중에서

    도대체 할머니가 가 봤던 최고의 바닷가 소풍은 무엇일까요? 저는 재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을 참았습니다. 잠시 그 순간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습니다. 오 마이 갓! 아까보다 더 큰 탄성이 튀어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왜 최고의 바닷가 소풍이라고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글 없는 한 장의 그림이 모든 것을 알려 줍니다. 마치 한 장의 추억 사진 같고, 인생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최고의 소풍이 있다

     

    저도 잠시 제 인생 최고의 소풍을 떠올려 봅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소풍 전날입니다. 저는 언제나 소풍 당일보다 소풍 전날이 더 행복했습니다. 소풍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순간들이 설레고 흥분되었습니다. 특히 그날은 더욱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아마도 1학년 때 다녀온 소풍이 참 좋았나 봅니다.

    엄마는 제 마음을 헤아리고 소풍 가서 먹을 것들을 사오라며 미리 용돈을 주셨습니다. 제가 직접 소풍을 준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당장 슈퍼로 달려갔습니다. 사이다와 과자를 잔뜩 골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주머니에 넣은 용돈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자 부모님은 야단을 쳤고 형들은 기뻐하며 저를 놀려댔습니다. 제 인생에서 소풍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속이 상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내자식이 그깟 일에 운다고 또 야단을 맞았습니다. 부모님은 저녁 내내 제 속을 태운 다음 밤이 깊어서야 새로 용돈을 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눈물이 뚝 그쳤습니다. 죽었던 소풍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 잘 살고 있나요?

     

    내 마음을 울린 책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 권의 그림책은 한 가지 추억을 불러옵니다. 보통 한 권의 그림책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는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불러옵니다. 할머니 주름살을 소재로 할머니의 거의 모든 시간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커다란 수수께끼는 무엇이었나요? 최고의 소풍은 언제였나요? 그 사람을 처음 만나서 무엇을 했나요? 첫 번째 이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가장 소중한 만남은 언제였나요? 그림책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불러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소중하냐고, 무엇이 행복이냐고, 잘 살고 있냐고.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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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입은 요정들… 지친 엄마 대신 집안일 척척 [김지은/문화일보 201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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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6-12-14
    조회수 : 810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1202010329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6.12.02

     

    2016년의 그림책 흐름을 정리하면서 하나의 키워드를 찾는다면 ‘엄마’와 여성들의 연대인 것 같다.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가 출발이었다. 퇴근이 늦어지는 싱글맘 대신 친정엄마처럼 찾아온 선녀님은 식탁에 산처럼 큼직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놓고 간다. 강경수의 ‘나의 엄마’는 ‘엄마’라는 낱말만으로 한 세대 여성과 다음 세대 여성의 삶을 톡톡하게 잇는다. ‘한밤중 개미 요정’은 앞선 그림책들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여성이 여성을 돕는’ 이야기다. 동양화를 전공한 신선미 작가는 절제된 붓끝과 절묘한 색 감각을 보여주면서 생소하고 사랑스러운 판타지를 펼친다.

     

    주인공은 ‘개미처럼 아주 작고 조용히 움직이는 요정들’이다. 어린이와 어린이 같은 마음을 지닌 동물에게만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책 속 개미 요정들은 하얀 끝동을 단 보라색 꽃무늬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빨간 꽃신을 신었다. 우리 요정은 한복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던 걸까. 개미 요정의 엽렵한 동작과 펄럭이는 한복 치마의 선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엄마는 아픈 아이 곁에서 물수건을 갈아주다가 노곤해져 잠이 들고 밤샘 근무를 자청한 개미 요정들은 엄마 대신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밀린 집안일도 척척 해놓는다. 단정히 쪽을 찐, 요정들의 동작에서는 수라간의 상궁처럼 눈부신 전문가의 위엄이 느껴진다.

     

    만약 이 그림책의 서사가 여기까지 오고 멈췄다면 ‘마루 밑 아리에티’처럼 흔한 요정담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개미 요정들과 엄마의 첫 만남이 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두근거리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투명하게 맑은 빛깔의 치마저고리, 배씨댕기, 제비꼬리댕기, 오색꽃신이 펼친 면을 거침없이 수놓는다. ‘우리 옷이 이렇게 곱구나, 치마저고리 입은 아이들이 이렇게 야무지고 씩씩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린 엄마와 아이와 개미 요정이 같이 노는 장면에서 아이는 엄마의 빛나던 시절을 알게 되고 고단한 엄마들은 당당하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가슴이 후련해지는 걸 느낄 것이다. 나라는 막막하고 부끄럽지만, 뒤로 갈수록 더 멋진 우리 그림책이 나오는 판타지 같은 2016년이다. 지친 우리 곁에도 개미 요정들이 왔으면 좋겠다.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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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까만 절망에 길 잃지 않기를 [소윤경/한국일보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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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37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03f53b1db42f46ddbef00136c833b984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6.15

     

    당분간 집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뜻밖의 불행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자책한다. 무능력하다, 처신을 잘못했다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장애물들이 놓인 인생이라는 달리기시합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기도 하고, 번번이 입사시험에 떨어져 백수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무사히 지나온다 한들, 결혼과 자식문제, 명예퇴직 등등 인생 고비고비 마다 넘어야 할 산들이 태산이다. 혈기 넘치고 당당하며 자신만만해야 할 청춘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주눅 들고 위축되어 보인다.

     

    거울 앞 소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얼굴에 나 있는 검은 반점을 바라보고 있다. 반점은 어느새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고, 가리고 숨길수록 사람들이 더 쳐다보는 것 같다. 엄마와 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닦아내 보고 싶지만 낙인처럼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등에도 검은 반점이 있다. 자신과 꼭 닮은 반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 사귀어도 본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점 때문에 결국 그도 싫다. ‘내 몸에 검은 반점이 살고 있는 것일까, 검은 반점 속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검은 반점이 소녀의 인생을 삼켜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연필로 섬세하게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들은 주인공이 타인들이 가진 다른 색깔의 반점을 발견해 가면서 점차 컬러로 가득한 세상으로 변화된다. 책 속의 접힌 날개를 펼치니 파란 바다와 눈부신 하늘아래 아름다운 꽃과 마을이 보인다. 눅눅해진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장면이다.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그림책이다. 표지가 벨벳으로 되어 있어 손 자욱이 남으니 책을 펼칠 때도 신경을 쓰게 된다. 마치 자신을 소중히 다뤄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엣눈북스는 시나리오 작가인 정미진씨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독립출판사이다. 묵묵히 서점가에서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것은 그만의 깊이를 지닌 작품들을 출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든 그림책으로는 ‘있잖아, 누구씨’, ‘잘 자, 코코’, ‘깍은 손톱’등이 있다.

     

    청춘은 모래알처럼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그 흩어진 수많은 모래알들이 햇빛에 찬란히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깔고 앉은 어두운 그림자는 그 빛에 비하면 한 톨 검은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작고 까만 절망에 사로잡혀 부디 길을 잃지 말기를. 오점과 불행이라는 상처가 시간이 흘러 단단한 굳은살로 박이면, 마침내 세상과 싸울 남다른 개성과 독특한 매력이라는 밑천이 되기도 하니까.  

     

    소윤경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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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널 돌려보듯… 시간이 변주한 열세 가지 이야기 [김지은/문화일보 20170120]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2-02
    조회수 : 765

    미디어 : 문화일보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12001032612000001

    필자 : 김지은. 어린이책 평론가

    등록일 : 2017.1.20


    이 그림책의 첫 문장은 ‘12명의 아침이 밝았어요’이다. 그리고 곧 ‘사자 한 마리와 워흐리히의 동상, 그리고 열 명의 하루’라고 고쳐 말한다. 두 번째 페이지에서는 등장 인물 전원이 쏟아지듯 한꺼번에 나타난다. 호기심 많은 아기 피칼부터 열혈 소방관 피아트, 음악가 워흐리히의 전기를 쓰는 소설가 카프카프와 워흐리히의 동상까지, 이들은 서로 어떻게 얽혀 있을까. 당연히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다. 독자는 열두 개의 공을 들고 저글링을 하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된다.


    20세기 후반, 작가 백남준이 수백 개의 브라운관을 쌓아놓고 비디오아트를 펼치던 무렵만 해도 분할된 움직임을 동시에 보는 일은 낯선 체험이었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CCTV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여러 사람이 동시간대에 하는 행위를 한꺼번에 지켜보는 일에도 익숙하다. ‘12명의 하루’는 시간 축을 고정하고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경험 사이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되어 있다. 


    오전 8시가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요리사는 빵을 굽고 밤샘 집필을 마친 소설가는 눈의 피로를 못 이겨 안경을 벗고 아기는 양동이의 물을 엎지른다. 오전 10시가 되면 야간근무를 마친 간호사 사라라가 잠자리에 들고 요리사는 점심 샌드위치를 만들며 워흐리히의 동상 근처에는 한가로운 산책자들이 등장한다. 열두 개의 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변주를 보여주는데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림책 하단에 슬라이드쇼처럼 흐르는 동네 풍경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갑자기 비는 내리고, 해가 지면서 네온사인이 켜진다.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은 눈덩이가 커지듯 저절로 굴러간다. 인물들 사이를 연결하는 퀴즈의 고리도 늘어난다.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을 모두 지켜보고 나면 다채널을 돌려가며 ‘다큐멘터리 3일’을 본 것도 같고 열두 인물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기도 하다. 분명히 아무 글자도 없는데 우리는 열두 가지 이야기에 마을 공통의 이야기 하나를 더해서 적어도 열세 가지 이야기를 읽었다. 마지막 장의 지도는 중요한 단서이니 절대 미리 열어보지 말 것. 가족이 함께 읽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제20회 일본 그림책상을 수상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짧은 시간에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그림책이다.



    김지은 어린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