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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긋한 행운씨와 고단한 불행씨, 우연히 같은 곳으로 여행 가는데 [소윤경/한국일보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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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3-23
    조회수 : 40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e4492cdfe9904838b515454024b2ec28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2.10

     

    한때 “그래, 결정했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TV 오락 프로그램이 있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결말을 맺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했다.

     

    만약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물론 올바른 선택이 가져다 주는 것은 해피엔딩일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선택만이 삶을 결정짓는 것일까? 그게 다일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평범한 두 남자가 있다. 행운씨는 매사에 느긋하고 긍정적이다. 불행씨는 조급하고 부정적인 성격이다. 둘은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지만 우연히 같은 날 세레레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행복씨는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그 보답으로 특별하고 즐거운 여행을 선물받는다. 반면 불행씨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허둥대다 고되고 혹독한 여행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목적지로 향하지만 여행을 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결말을 보여 준다. 행운씨는 여전히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만들고, 불행씨는 행운이 찾아왔음에도 늘 불만이 가득한 채 뿔이 나있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책의 한가운데 있다. 앞뒤 구분 없이 모두 앞표지이다. 한쪽 표지는 행운씨의, 반대편 표지는 불행씨의 여행이 각각 시작되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는 책의 중간 지점에서 큰 펼침 화면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림 속에서 두 인물 사이의 인과 관계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활기 넘치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독자에게 두 가지 색다른 여행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행운씨의 느긋함에, 또 누군가는 불행씨의 강박증에 공감할 것이다. 마음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길은 인생과 닮아 있다. 뜻밖의 행운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가 보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탄하기보다는 고단한 시간조차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기꺼이 즐겨 주자. 오늘도 행운씨가 된 당신의 여행은, 삶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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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에 봄 그림책을 펼쳐드는 까닭 [김장성/한국일보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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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292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65be8c18f3c3457f9c246e14de1a3f32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7.27

     

    제목이 말하듯 이 그림책은 ‘봄 책’이다. 한여름에 때 아닌 봄 책을 꺼내든 까닭은 무언가? 청산해야 할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겨울을 나는 생명들은 어서 봄이 되고 싶다. 민들레, 개구리, 반달곰, 네발나비, 진달래, 그리고 어린아이 연이.

     

    작고 약하고 대단치 않거나 위기에 몰린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봄이 더 그립다. 민들레는 어디든 더불어 피어나고 싶다. 들이든 산이든 도시 골목이든, 피어나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개구리는 자유로이 뛰고 헤엄치며 맘껏 돌아다니고 싶다. 반달곰은 갓 돋아난 새싹 냄새를 배불리 맡고 싶고, 네발나비는 꽃내음 속을 날아 봄소식 전하고 싶으며, 진달래는 누구든 두 눈 환해지도록 속에 접어둔 고운 빛을 펼쳐 보여 주고 싶다. 연이는 어떤가. 온몸에 볕이 스며 마음 반짝일 날을 깨금발로 동동 기다리다 못해 스스로 봄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들은 차가운 겨울 땅을 박차고 나선다. 용기 내어 꽃을 피우고, 폴짝 뛰어오르고, 기지개를 켜며 굴 밖으로 성큼 나선다. 발갛게 꽃망울을 부풀리고, 서늘한 바람에 덜 풀린 몸을 실어 날아오른다. 무거운 겨울옷을 가뿐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집밖으로 나선다. 아, 바야흐로 봄인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봄인 줄 알았으나 아직 봄이 아니다. 쌩쌩 바람은 차고 볕은 아직 미약하다. 다들 몸을 움츠린다. “봄이 되려면 더 기다려야 하나 봐.” 하지만, 언제를 봄이라 하는가. 흐르는 세월에 금을 긋고 여기까지 겨울이요 저기부터 봄이라 할 수 있는가. 설령 그렇대도 스스로 피한의 골방에 처박힌 채 떨쳐 나오지 않으면, 세월이 금을 지난들 봄이라 할 수 있는가. 연이는 그것을 안다. “아니야! 개구리가 나오고 곰이 깨어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면 봄이잖아.” 그러자 반달곰이 말한다. “맞아, 내가 봄이야.” 나비와 개구리도 말한다. “나도 봄이야.” 다 같이 외친다. “그래, 우리가 봄이다!” 이들뿐이랴, 새싹들이 발딱발딱 고개를 든다. 나뭇잎이 힘껏 손을 내민다. 꽃들이 펑펑 망울을 터뜨린다. 새들은 노래하고 토끼며 다람쥐, 고라니도 소리 지르고 아이들은 팔 벌려 들판을 달린다. 그랬더니, 마침내 연둣빛 들판이 열린다. 비로소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봄이다.

     

    10년 한파를 견디다 못한 생명들이 차가운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와 겨울을 몰아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겨울 가면 당연히 봄인 줄 알았는데, 그늘의 추한 잔설들이 여전히 한기를 내뿜는다. 일꾼 가리자는데 종북을 들이대고, 유신의 우상을 세우겠노라 악을 쓴다. 물난리에 외유를 꾸짖는 국민들을 들쥐라 모욕한다. 그뿐인가. 봄이라 자처하는 이들 속에도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겨울들이 있다.

     

    다시, 언제부터를 봄이라 해야 하는가. 그림책이 일러준다. ‘골방으로 되들어가면 안 돼! 나와서 외쳐야 해, 우리가 봄이라고. 발딱발딱 고개를 들고 힘껏 손을 내밀고 펑펑 망울을 터뜨려야 해. 노래하고 소리치고 팔 벌려 달려야 해!’ 그래,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삽 들어 잔설을 걷어내고, 그늘마다 봄볕을 끌어들여야 한다. 구석구석 꽃을 심고 겨울이 다시는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수시로 살펴야 한다. 우리 안의 겨울 또한 발본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침내 봄이다. 염천에 봄 책을 다시 꺼내든 까닭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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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다정한 사람들... 쫌 이상한가요? [최정선/한국일보 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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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4-14
    조회수 : 33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f0ae770db19f433eaf89ac8c68864237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3.09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이란 없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용서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먹으면 시간을 들이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될 거라고 믿었다.

     

    교만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납득이 안 가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 외워지지도 않아서 마주칠 때마다 새록새록 놀라운 사람들, 내 빈약한 상상력을 코웃음 치며 가뿐하게 뛰어넘는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 꽤 많다. 요 몇 달 사이에 뼈아프게 깨달은 사실이다. 

     

    웬만해선 이상해 보일 리 없는 시절이라 그런지 미겔 탕코의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째 ‘쫌’은커녕 눈곱만큼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발밑의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마음 쓰는 사람, 무리에서 겉도는 외톨이를 얼른 알아채고 다독이는 사람, 상대편의 승리를 축하해줄 줄 아는 사람, 객석이 텅 비었다면 자신을 위해 기꺼이 연주할 수 있는 사람, 남과 다른 길 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 나무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남을 웃기기 좋아하고, 다른 이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  

     

    하얀 종이에 가느다란 펜으로 오밀조밀 그려낸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쫌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은 곧바로 소수집단,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을 떠오르게 하지만, 작가는 대비나 비교를 통해 다름을 드러내거나 갈등 상황을 연출하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꼬물거리는 선과 따뜻한 노랑, 시선을 모으는 파랑의 경쾌한 조화 속에서 강아지를 토닥이는 살가운 손에 우람한 팔뚝과 문신을, 메롱 하고 혀를 빼문 얼굴에 근엄한 옷차림을 선사하며 미소를 자아낼 뿐이다.  

     

    이런 천연스러움은 반어법의 증거일 테니 차라리 이 책은 사람 예찬이라고 보아야겠다. 달콤하고 선선한, 가벼운 농담 같은 이 그림책은 사람에 지치고 사람에게 실망한 이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래도 사람을 믿어보라고. 세상에는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작고 약한 존재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이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 자신을 존중하기에 다른 이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존재들 말이다. 음, 조금은 위안이 된다.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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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김장성/한국일보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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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933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c2a07d18a2db430e80de2ab6a589495e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08.24

     

    이 책의 표지에는 고구마 그림과 함께, ‘고구마구마’라는 제목과 ‘사이다’라는 지은이의 이름이 쓰여 있다. 고구마와 사이다? 퍽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하며 책장을 열어 본다. 화면 가득한 고구마 밭, 캘 때가 되어 보이는 고구마 줄기에 이어 고구마를 쑥 뽑아 올리는 손. 그리고 말과 그림의 잔치가 벌어진다. 구수한 종결어미 ‘-구마.’로 맺는 말들이 고구마의 갖은 형상을 제시하고,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그러한 고구마들을 푸짐하게 보여준다. “둥글구마.” “길쭉하구마.” “크구마.” “작구마.” “굽었구마.” “배 불룩하구마.” “털났구마.” “험상궂구마.” “참 다르게 생겼구마.”…

     

    이어지는 조리법. 푹푹 쪄 내니 말캉말캉 찐 고구마. 불에 구워 내니 구수한 군고구마. 기름에 튀기니 고소하고 바삭한 튀긴 고구마… 맛과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똑같은 한 가지는 모두모두 속이 노랗게 빛난다는 것. 이제 먹을 차례다. “고구마 잔치 열렸구마!” “그럼 맛있게 먹자꾸마!” “목메구마!” “탄 것도 맛나구마!” “배가 빵빵하구마.” 빵빵하게 먹었으니 배 속에 가스도 빵빵. 마침내 “빵! 뀌었구마!” “독하구마!” “쓰러지는구마.”

     

    쓰러진 녀석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데, 뀐 녀석은 태연히 콧구멍을 후비며 말한다. “미안하구마. 덕분에 속은 편안하구마!” 책 속엔 여전히 방귀냄새 풀풀 날리니, 장면마다 등장해 “신나구마” “불타는구마!” “아팠겠구마” 하고 추임새를 넣어 오던 가장 작은 꼬마 고구마가 “못 참겠구마” 투덜대며 그릇에 담긴 물 속으로 잠겨 들어 숨는다. “이제 끝났구마.” 과연 그럴까? 한 장을 더 넘기니 물에 잠겼던 녀석의 머리꼭대기에 쏙! 싹이 나 있다. “싹났구마!” 그 싹을 키워 봄에 심으면 뜨거운 여름 지난 뒤 선선할 무렵, 다시 고구마 잔치 벌어지리라.

     

    가지런히 고른 게 아니라, 제각기 둥글고 길쭉하고 크고 작고 굽었고 배 불룩하고 험상궂은 고구마들.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는 잔치를 함께 벌이는 고구마들이 딱 우리 아이들 같다. 아니, 때로 너니 나니 탓을 하며 쌈질을 하다가도 의와 정을 나누며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딱 우리네 장삼이사들이다.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모두모두 속은 반짝반짝 빛날 것이니.

     

    모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시끌시끌하게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면서도 나누고 베풀며 어우러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상식을 국정의 기조로 삼는 정부가 들어섰다. 그 상식이 지켜지려면 책 읽는 문화가 상식을 받쳐주는 든든한 한 기둥이 되어야 하리라. 그래서 출판계와 독서문화계가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책 ‘읽어 주는’ 대통령은 어떤가. 어느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쯤 청와대를 견학하는 아이들 앞에 나와 그림책 읽어 주는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그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면, 도서목록에 이 그림책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 한 때 ‘고구마’라 불리기도 했으나 취임 후 시원한 ‘사이다’를 수시로 선물하는 대통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 이 그림책을 경남말로 읽어 주었을 때 참 맛나게 들은 기억이 있어서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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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진 것을 다 내주는 임금님의 이사 [소윤경/한국일보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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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4-14
    조회수 : 469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8d0858155bf34e0483ccc4c386e29ef7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3.16

     

    봄기운이 차오르니 집안 청소를 하고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보지 않는 책들과 입지 않는 옷가지, 내친김에 냉장고 안까지 비우자 살림살이는 한 결 가뿐해진다. 단출한 삶에는 새로운 즐거움들을 위한 여백이 생긴다. 더 나아가서 가진 것을 세상과 나누는 일을 상상해 본다.

     

    왜 어떤 이들은 평생 힘겹게 모은 돈을 선뜻 기부하고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일까?
    머나먼 나라에, 착하고 부끄럼 많은 임금과 덤벙대는 친구(신하) 여섯이 성 안에 살고 있다. 친구들이 비좁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한 임금은 커다란 새 침대를 만들라고 명한다. 친구들은 임금을 위해 터무니없이 거대한 침대를 만든다. 침대는 성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커서 임금은 이사를 결정한다. 수레마다 진귀한 왕실의 물건을 가득 실은 긴 행렬이 새로운 성을 향해 출발한다. 길을 가던 중에 임금의 일행은 야윈 염소들과 비 새는 오두막에 사는 나무꾼 부부, 비에 흠뻑 젖은 남자 아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엄마 사슴과 떨어진 아기 사슴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임금은 친구들에게 “도와주거라” 말한다. 수레 안의 물건들로 기상천외한 해결방법을 짜내는 친구들에게 임금은 그저 미소만 짓는다. 비록 소통은 원활하지 않지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같기 때문이다. 수레에 담은 값진 물건들이 줄어들수록 일행들은 점점 더 행복해져 간다. 우여곡절 끝에 왕의 행렬은 새로운 성에 도착한다. 남은 것은 예전부터 임금이 쓰던 침대뿐이다. 하지만 임금과 친구들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림은 유럽의 고전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데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왕실의 가재도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라면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들을 어떻게 가차 없이 나눠주거나 던져 버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가진 것을 나누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림책 속 아름다운 이야기만 같다. 임금처럼 재산이라도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겨울의 광장에서 세상을 돕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들이 모여 봄이 오고 있다. 이제 꽃들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타심이란 결국 스스로에게 내린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책장을 덮는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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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 많은 우리 강아지… 어떻게 마음을 열까 [소윤경/한국일보 20170413]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4-14
    조회수 : 58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c2fa003e205249df962220a3131a253e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4.13

     

    독일인들은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에 출입하는 것에도 불편함이 없다.

     

    독일의 개들은 어릴 때부터 애견 유치원을 다니며 기본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20%가 넘는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동물복지정책은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공공주택이라는 주거방식과 동물 의료보험 부재도 유기동물을 양산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 집을 지키던 개들이 이제는 반려견이란 이름에 걸맞게 배변을 가리고, 함부로 짖지 않으며, 얌전하고 온순해야만 한다.  

     

    표지 그림을 보면 애견용 이동가방 안에 시추 한 마리가 잔뜩 움츠린 채 엎드려 있다. 풍성한 머리털에 가려져 겁먹은 눈조차 보이질 않는다. 민지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동생도 없는데 강아지라도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았다. 마침 유기견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엄마의 마음이 흔들렸고 민지의 소원대로 개를 입양하게 되었다. 민지는 개에게 ‘영리한 남자’라는 뜻으로 ‘영남’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러나 영남이는 민지의 기대와 달리 좀체 다가오지 않고 구석에 숨어 버린다.  

     

    영남이는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간다. 엄마가 아끼는 이불에 똥을 누거나 집안의 물건들을 물어뜯는다. 엄마는 영남이가 머리가 좋지 않다고 한다. 아빠는 성격이 나쁘다고 단정한다. 심지어 한밤중에 시끄럽게 짖어대는 통에 민지네 가족들은 잠을 못 이룬다. 민지는 부모가 영남이를 보내 버리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하다. 어느 날, 민지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영남이가 보이지 않는다. 민지는 황급히 아파트 주변을 찾아 헤맨다. 정말 엄마아빠는 영남이를 어디론가 영영 보내버린 걸까? 집을 나가게 그냥 내버려 둔 걸까?  

     

    ‘유기견 영남이는’ 유진 작가가 실제 유기견을 입양하면서 겪게 된 이야기를 파스텔 톤의 따듯한 그림에 담고 있다. 반려견과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가족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동물들과 보낸 포근한 시간을 기억한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다. 민지네 새 가족, 영남이가 아픈 기억들을 잊고 부디 오래도록 사랑받기를.

     

    소윤경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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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기, 남은 자들의 예의이자 도리였다 [김장성/한국일보 20170330]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30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943f74fd54a74b8185e24fd7c85826b4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 3.30

     

    그를 끌어내리자 그 배가 올라왔다. 거짓말처럼. 그 배는 단번에 우리의 시간을 3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마땅히 우리를 그때처럼 아프게 하면서, 놓쳐 버릴 뻔했던 진실을 찾는 희망 또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 배는 왜 3년 동안이나 바다 속에 잠겨 있어야 했을까? 그럼에도 그 배는 어떻게 끝내 떠오를 수 있었던 걸까?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그림책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본다. 

     

    어떤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어느 날, 공룡 한 마리가 ‘나’를 찾아온다. “안녕! 오랜만이야!” 공룡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태연히 내 방에 짐을 푼다. “방이 그대로네?” 그렇게 시작된 동거. 공룡은 잘 먹고 잘 자고, 코 골고 이 갈고 방귀 뀌며 잠도 잘 잔다. 영화관에서 시답지 않은 장면에 낄낄대거나 눈물을 쏟아 나를 창피하게 하고, 탁구를 칠 땐 처음 친다면서 나를 열패감에 빠뜨리며, 목욕탕에서는 엄청난 때로 내 팔을 아프게 한다. 당혹에 겨운 나는 급기야 묻는다. “너… 누구야?” “나… 정말 몰라?”  

    토라진 공룡은 밥도 먹지 않고 하염없이 앉아 있기만 한다. 나는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기분을 풀어 주러 간 놀이공원에서 공룡이 말한다. “잊혀지는 게 힘들까, 잊는 게 힘들까?” 나는 대답이 없고 공룡은 말을 잇는다. “있잖아, 우리 마을 공룡들은 언제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준비해 둬. 여행을 갈 수 있는 건 행운 중에서도 최고의 행운이야. 가끔은 여행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고 가슴이 떨려. 그리운 것들이 생각나거든.” 그리고, “여행의 시작은 기억이야.”

    그제야, 흩어지고 멈추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떠올린다.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나만 어른이 되었던, 친구! 귀퉁이가 해어진 기억 속의 벤치에 열다섯 시절의 공룡과 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아, 너였구나.” 친구가 웃는다. “기억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오랜만에 여행할 수 있었어.” 웃음을 남기고 친구는 떠났다. 나는 생각한다. ‘친구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책을 덮고 나도 생각한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무엇이 있는 걸까? 무엇이 옛 인연을 공룡처럼 낯설게 하고, 그럼에도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저 아득한 행성으로 떠나 보낸 이들을 이따금 저마다의 방으로 불쑥 불러들이는 걸까? 그가 잊힌들 존재하지 않는 그는 아플 수 없고, 그를 기억한들 가 버린 그는 다시 돌아올 리 없는데.  

    죽어 떠난 이 돌아올 리도 아플 수도 없으므로,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가 죽어 떠난 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예의와 도리를 점검하는 시뮬레이션에 다름 아니다. 예의와 도리는 종종 밥보다도 더 굳건하게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이름이니까. 인간다운 인간은 안온한 밥으로 영원한 이름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견딜 수 없으니까.


     
    그랬다. 그를 끌어내리고 아득한 바다 속의 그 배를 끝끝내 물 밖으로 불러낸 것은, 멀쩡히 눈뜬 채 차디찬 물속으로 떠나 보낸, 그 배의 아이들을 잊는 것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는, 수많은 이름들의 예의와 도리였다. 떠나간 친구를 잊는 것이 미안했던 책 속의 한 이름이, 아득한 행성의 공룡을 제 방으로 부른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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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의 질감이 그대로, 상추가 살아있는 듯 [이상희/한국일보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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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358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5eb12e3023924163a54dd01881eea1cc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 5.25

     

    볕 좋고 바람 좋으니, 무엇이든 심고 가꾸기 좋은 때이다. 도시 주택가 곳곳에서도 한 뼘 빈 터 한 줌 흙에 물주고 김매며 가꾸는 손길을 만나곤 한다.

     

    땅을 부동산으로 셈하는 이들이 세웠을 ‘경작 금지’ 팻말이 머쓱하도록, 아스팔트 콘크리트 세상 여기저기를 비집고 푸릇푸릇 자라는 생명이 꽃 못지않게 어여쁘다. 갓 딴 상추ㆍ풋고추ㆍ파ㆍ쑥갓이 푸짐한 싱싱 밥상에 둘러앉아 식구들이 서로서로 볼이 미어지도록 쌈밥을 먹여주는 정경이 절로 떠오른다.

     

    조혜란의 그림책 ‘상추씨’는 상추만큼이나 건강하고 생생한 어조로 그러나 작가 특유의 익살은 잊지 않은 채, 씨 뿌려 가꾸고 거두어 먹는 일의 기쁨에 대해 얘기한다. 한마디로 ‘경작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돌멩이로 울타리 친 딱 한 가족이 먹을 만큼의 손바닥 텃밭, 거기에 다가와 깨알 같은 상추씨를 뿌리는 작고 빨간 장화의 주인공은 최초의 농부 같다. 서툰 솜씨 탓에 몇 톨은 울타리 바깥으로 훌훌 날아가는 상추씨! 라이프니츠 대학 식물생태학 교수 한스외르크 퀴스터가 ‘곡물의 역사’에서 재배 식물 경작이야말로 문명과 국가를 만든 인류 최대의 사건이었다고 힘주어 말한 대목의 구현이랄까.

     

    콩 심은 데 콩 나듯 상추씨 뿌린 자리에 상추 싹이 났다. 바람 맞고 비 맞고 햇빛 쬐며 어느새 울타리 넘치게 쑥쑥 자랐다. 빽빽이 자란 어린잎은 ‘군데군데 솎아 먹’고, 좀더 자란 큰 잎은 ‘뚝뚝 잘라’ 먹는다. 지금껏 웃고 놀라고 찡그리던 상추 잎들이 식탁에 오른 장면, 특히 고기며 회를 올려놓은 채 싱긋 웃는 입매를 하고 얌전히 눈 감은 상추잎을 보라. 사물에 눈 코 입 그려 넣은 그림을 편치 않게 여기는 독자조차 웃음 터트리게 만든다. 햇빛 쬐고 비 마시고 바람 맞으며 쑥쑥 자란 것으로, 싱싱하고 푸짐한 밥상을 차린 것으로 상추는 제 할 일을 마땅히 다 했다는 것이다.

     

    ‘상추씨’의 모든 장면은 퀼트 입체 작품으로, 촬영 작업 후 세심한 보정을 거쳐서 천의 질감과 그 위에 땀땀이 공들인 홈질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천을 오리고 잘라서 꿰매고 덧붙여 수놓은 솜씨는 풋풋하면서도 맵짜다. 그렇게 이뤄진 푸성귀의 이채로운 이미지는 낯설고도 새롭고 유쾌하다. 작가의 전작들이 보여준 능란한 붓 솜씨와는 다르게 그러나 똑같이 정성스럽고 곰살맞다. 그리고 뒤 표지 안쪽 면지에 붙어있는 조그만 봉투 하나!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그림책을 사야 봉투를 열어볼 수 있다.

     

    누구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했다지만, 이즈음 특히 무엇인가 심어보고 싶고 가꿔보고 싶다. 우리 사회가 더도 덜도 없이 심은 대로 나는 땅이 되어줄까.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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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소녀처럼,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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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조회수 : 67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09e5859038014813ae51e1d0ac98a3e5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11. 09

     

    환절기가 되니 어김없이 부고가 줄을 잇는다. 예정되었다 해도 짐작과는 매우 다른 이별과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소식이 독감처럼 밀려온다. 찬바람에 마른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빛 바랜 마른 잎을 미련 없이 훌훌 털어 내는 어쩐지 매정한 나무들과 온기 잃은 햇볕과 초저녁부터 짙게 깔리는 땅거미의 계절이다. 얄팍해진 달력에 남은 숫자, 휴대폰 화면에 뜬 문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갈피 잃은 마음이 이리저리 서성댄다.

    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존엄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이 시작되었다. 첫 존엄사를 선택한 이가 등장했다. 죽음에 대한 선택은 삶에 대한 선택이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란 결국 품위 있게 살 권리니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을 검색해 본다. 이래저래 죽음이란 무엇일까 곱씹게 되는 계절이다.

    “나는 죽음이에요.” 죽음은 검푸른 머리에 검푸른 옷을 입고 머리엔 흰 꽃을 한 송이 꽂았다. 동그랗게 뜬 푸른 눈, 홍조를 띤 볼, 길고 가는 다리.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이 쓰고 마린 슈라이더가 그린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에서 죽음은 뜻밖에도 귀여운 소녀의 형상이다.

    “삶이 삶인 것처럼 죽음은 그냥 죽음이지요.” 죽음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들꽃 만발한 오솔길을, 서커스 천막 들어선 들판을, 새들이 지저귀는 나무 밑을, 집들이 빼곡한 마을을 지난다. 죽음은 성실하고 엽렵하고 싹싹하다. 나이든 이들을 찾아가 다정하게 부축하고, 솜털 같은 머릿결의 아이들을 찾아가 눈을 맞추고 손을 잡는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들판의 동물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빠짐없이 찾아가 상냥하게 손 내밀고 곁에 머문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기 위해 불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나치기를 바라며 문을 닫아요.” 그러나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가 찾아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요.”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고요할지. 땅에 묻힐지, 한 줌의 재가 되어 멀리 날아갈지, 아니면 하늘로 올라갈지. 혹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지, 그 끝은 어디일지… “궁금한가요? 내가 알려 줄게요. 나는 아무런 비밀도, 숨기는 것도 없어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건만 조곤조곤 속삭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고운 색감, 소박하고 정성스런 그림 속에서 세상은 단순하고 조화롭다. 저마다 다사다난하고 복잡다단할 인생이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곁에 있으면 힘이 되는 속 깊은 친구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책이다.

    문을 열면 바로 그곳에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볼이 발그레한, 이웃집 소녀 같은 죽음이 속삭인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과 하나이고, 사랑과 하나이고, 바로 당신과 하나랍니다.”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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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굴까… ‘어른이’를 울리는 여행 [최정선/한국일보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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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308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4f8f5391ef3e4d4e91d46c1f413780f5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8. 03

     

    살다 보면 종종 크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으면 다행이련만 때때로 그 돌부리들은 우리 삶을 통째로 넘어뜨리려 든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당황하고 짐작보다 큰 타격에 휘청대다 보면 온통 뒤죽박죽이다. 이제껏 믿어온 것들이 다 의심스럽다.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리어왕처럼 외치고 싶어진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이 아무도 없느냐고.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는 루이스 캐럴과 미하엘 엔데의 후예가 이런 이들에게 넌지시 건네는 작은 선물 같다. 고전적인 은유와 암시,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로 가득한 선물이다. 숲 한가운데 커다란 곰이 서 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곰인지 털북숭이 벌레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살아 있기에 그저 열심히 살았다. 몸이 가려우면 나무에 대고 벅벅 문질렀고 하루하루 키가 크고 코가 크고 털도 북슬북슬 자라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금 문득,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서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지?”

    그리하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아직 내가 아닌 내가 나를 찾으러 세상 속으로 걸어간다. 길잡이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쪽지다. “네가 나야?”라는 질문. “정말 네가 나인지” 확인해보라는 권유. “난 매우 상냥한 곰”이고 “정말 행복한 곰”이며 “몹시 사랑스러운 곰”이라는 힌트.

    여행은 만남과 발견, 배움과 깨달음의 연속이다. 불도롱뇽, 들소와의 만남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인 나, 타인에게 비춰진 내 모습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이고, 꽃송이 수를 세는 데 집착하는 펭귄과의 만남은 자신의 가치관을 확인하고 자기 삶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거북이 택시와의 만남을 통해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앞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며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란 결국 자신이 도착한 곳일 수도 있다는 삶의 역설을 배운다.

    여정의 끝에 다다른 곳은 “곰의 집”, 바로 자신의 집이다. 거울 앞에서 곰은 재창조된 자신을 마주한다. “아! 네가 나구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반갑고 사랑스럽다. 자기 긍정, 자기 승인의 순간이다. 이제 곰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또 어떤 돌부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 아무래도 어린이보다는 어른에게 더 호소력 깊을 철학적인 우화.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판화와 묵직한 질감의 강렬한 캐릭터가 신선한 조화를 이룬다.

    어린이책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