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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대통령, 우리는 어떤가요? [소윤경/한국일보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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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104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6f4b4d04175e49b28782c1bd8568152a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09.07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추게 된 북한을 넋 놓고 바라봐야 하는 국민들은 패닉 상태다. 촛불의 힘을 모아 정권을 바꾸고 희망을 고대하던 날이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불안한 국제정세가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금 뼈아픈 역사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님을 상기한다.

     

    정전협정이 60년이 넘어 한국에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 평소 분단국가라는 상황을 인식하지 않는다. 북한이 같은 민족이니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식도 희박하다. 폭발로 인한 인공지진이 감지되었지만 변함없이 일상은 이어진다. 여전히 휴일을 즐기고,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제르마노 쥘로와 알베르틴은 사회와 인생에 대한 고민을 그림책으로 풀어내고 있는 부부작가다. 대통령은 출근하자마자 온갖 업무파일들과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로 분주하다. 경제 위기, 환경오염, 주식 폭락, 실업률 상승... 산적한 문제들이 책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통령은 창백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보고를 받고 있을 뿐이다.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프거나 심각한 문제들은 호수밑바닥에 던져두었다.

     

    장관들과의 미팅도 점입가경이다. 자리 싸움과 제 잇속 차리기에만 바쁘다. 외무부 장관이 이웃한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보고한다. 곧이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바로-저-위’ 호수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언론은 뉴스 속보를 전한다. 하지만 자문위원이라는 자들은 대책 없는 탁상공론뿐이다. 그사이 괴물은 전투기를 부수고 도심을 파괴하며 전진해 온다. 대통령은 연단에 나와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식의 형식적인 정부 공식브리핑을 한다.

     

    대통령은 이 모든 문제들을 회피하고만 싶다.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을 털어 놓는다. 엄마는 뭐든 잘 될 테니 맛난 저녁이나 먹으러 오라고 한다. 대통령은 퇴근시간에 쫓기듯 엄마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곳에서 보고로만 들었던 괴물과 조우하게 된다. 위기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 제 속만 차리는 무능한 참모들, 정권의 꼭두각시인 언론들이 괴물을 키워왔다. 호수 밑바닥에 숨겨놓고 가라앉혀 놓았던 문제들이 10년 동안 괴물로 자랐다. 이제는 괴물을 상대하기 역부족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당면한 심각한 문제를 제 때 해결하지 못하면 역사는 퇴행을 할 수 밖에 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평온한 일상은 무엇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림책 작가 소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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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정하는 손, 음식 나르는 걸음.. 노동이 빚은 우아한 춤! [최정선/한국일보 20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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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6-19
    조회수 : 352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0e80a8d6210742a79edfa6dd501762c1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6. 08

     

    기다란 장대가 툭, 옷걸이를 잡아챈다. 체크무늬 재킷이 펄럭 어깨춤을 춘다. 걸린 옷을 꺼내랴, 다림질 하랴, 다시 걸어 놓으랴, 세탁소 아주머니는 쉴 틈이 없다.

     

    다리미 내려놓을 시간, 걸음 옮길 시간조차 아까워서 한 손에는 다리미를 들고 다른 손으로 장대질을 한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라 이골이 났다. 상체를 기울이고 팔다리를 앞뒤로 죽 뻗으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다. 발레리나 못지않은 세탁소 아주머니의 우아한 몸짓을 눈썰미 좋은 작가가 기민하게 포착했다.

     

    정인하의 그림책 ‘밥․춤’은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심상치 않은 제목의 이 그림책 속 여인들은 세탁을 하고, 채소를 팔고, 구두를 닦고, 국수를 뽑고, 음식을 나른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물건을 배달하고, 거리를 청소하고, 건물 유리창을 닦는다. 거리에서, 동네에서 줄곧 마주치는 이들이다. 공사장에서 못을 박는 이도 있고, 흙짐을 지는 이도 있으며, 교통경찰도 있고, 주부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을 그림책에서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우리 그림책이 여성의 일을 어떻게 그려왔는지 문득 뒤돌아보게 된다.

     

    이들이 일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춤’을 읽었고 ‘춤’을 그렸다. 채소값을 흥정하며 비닐봉지를 뽑아드는 경쾌한 몸짓에서, 반죽을 치고 당기며 국수를 뽑는 튼실한 팔뚝에서, 흙먼지 날릴세라 조심조심 비질하며 떼어놓는 종종걸음과 탑처럼 쌓아 올린 음식 쟁반을 이고 우쭐우쭐 내딛는 잰걸음에서 발견한 흥과 리듬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여인들은 저마다 능숙한 솜씨로,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추듯 유연하게 움직인다. 일용직, 임시직, 영세 사업자, 그 밖의 또 어떤 이름들 뒤에 가려졌던 이들의 얼굴이, 제 힘으로 제 삶을 떳떳하게 꾸려가는 이들의 활기찬 몸짓이 우리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역동적인 구도, 먹의 농담을 감각적으로 구사한 그림이 아름답다. 일하는 여인들의 실팍한 어깨와 팔뚝, 압도적인 양감의 허벅지가 태산처럼 미덥다. 저 팔뚝과 허벅지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일하는 여성들의 초상화라 불러도 좋겠다. 작가가 포착한 춤은 이들이 살아온 세월이고 열정이며 자부심이고 삶이다. 글러브 대신 이태리타월을 낀 저 여인은 신화 속 역사처럼 당당하고 아름답다. 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빛을 잃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최정선 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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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퍼하지마… 열일곱 동갑내기의 이별 [소윤경/한국일보 201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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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361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059458199e4e4aff8b6496ca0b2e442f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08.10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물건들로 생활하며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물론이고, 뒤엉킨 관계들로 심신이 지친 이들은 비움으로써 비로소 여유와 자유가 차오름을 알아간다. 반면, 과연 버리는 게 능사일까 싶기도 하다. 오래 전 용돈을 아껴 샀던 책과 음반들, 처음 마련한 가전제품들, 해외여행의 기념품들…. 이들은 집안 어딘가에서 추억을 소환해줄 타임캡슐이 되어준다.

     

    사는 것이 쉬운 이들에게나 버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닐까? 신중하게 물건을 사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쓰는 것이 이미 미덕은 아닌 사회지만 말이다. 김혜형 작가가 실제로 탔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다. 자동차는 아이의 성장 과정과 가족의 삶을 회상한다. 최신형 자동차가 출산을 앞둔 엄마를 안고 병원으로 황급히 달린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감탄하며 다시 집으로 조심조심 돌아온다. 아이는 자라서 ‘빠방’ 타기를 좋아한다.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따라 부른다. 자동차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도 가족 캠핑을 가던 날에도 함께였다. 폭우 속에서 엔진에 물이 들어가기도 하고, 뒤차에게 받히기도 하지만 자동차는 가족이 크게 다치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시골로 이사 오게 되자, 더 험하고 궂은일들을 해야 했다. 그래도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자동차는 행복하기만 했다. 아빠는 차가 녹이 스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카센터에 도색을 맡겼는데 숯검댕이 같이 흉하게 변해 버리고 만다. 소음기까지 고장 나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부품이 단종되어 고칠 수 없는 상태다. 아이는 이제 시끄럽고 낡은 차를 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심지어 시골 길을 달리다 시동이 꺼져버리자 엄마는 폐차를 결심한다. 차를 떠나 보내기 전, 어느새 훌쩍 커버린 꼬마친구가 덤덤히 차에 올라탄다. 계기판의 적힌 32만 3,137㎞라는 숫자. 자동차가 가족과 함께한 거리이자 시간이다. 같은 추억을 가진 두 친구는 이별을 준비한다.

     

    차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가족들의 차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린 김효은 작가는 차가운 쇳덩이에 보드랍고 따뜻한 생명을 불어 넣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 비단 자동차뿐이겠는가. 반려동물,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돌아가신 조부모님…. 이젠 사라지고 없는 존재들이다.

     

    ‘슬퍼하지 마. 사람이나 자동차나 끝없이 달릴 수는 없잖아.’

    이제 막 청춘을 시작하는 푸르른 소년에게 건네는 자동차의 이별의 말이 의연하다. 비록 숯검댕이 자동차가 형태는 바뀌어도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물건으로 살아갈 것이라 슬픔을 달래본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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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되는 법 [이상희/한국일보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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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890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07655bebc64d47428b854b0bedf5cd3a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08.17

    ‘도덕경’이 있듯이 ‘부자경’도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그런 책을 맞닥뜨렸을 때 반사적으로 낯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어째서 ‘부자’라는 단어는 그토록 이물스럽고, 외람되고, 그러면서도 환상적인 걸까. 책의 표지와 목차를 얼른 훑어보고는 제 자리에 꽂았는데, ‘누구나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라는 첫 번째 장의 제목이 지금껏 또렷하게 남았다. ‘권리’라고!

    ‘담장을 허물다’는 ‘타고난 시 농사꾼’ 공광규 시인의 동명 시를 그림책 글로 다시 쓰고, 김슬기 그림책 작가가 리놀륨 판화 그림으로 구현한 그림책이다. 그림책 가운데서도 시 그림책 만들기는 몹시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고 판화 작업 또한 상당한 노동량이 투여되는 작업이다. 시인은 그림책다운 장면을 위해 이미 명시로 이름난 시를 깎아내고 다듬었다. 그림 작가는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배경 공간을 답사하고 각 장면을 연출해 리놀륨판에 옮겨 색상에 따라 판을 깎아내고 찍는 이른바 소멸법 방식의 판화 작업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을 바쳤다. 시인과 작가가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즐기고 감내한 공력 덕분에 어른들끼리 읽던 명시 한 편이 아이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예술품이 된 것이다.

    담장을 허문다는 일은 어떤 것인가? 그림책에는 시가 보여주었던 ‘담장을 허문’ 결과로서 상상하는 관념적 이미지가 아닌 실재 지리를 담보한 예술적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림 작가가 해석하고 연출한 그림 시에서는 어린이 독자를 위해 원래 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아이가 그려지기도 하고, 작가가 직접 답사하고 취재한 금강이며 무량사 가는 국도며 월산과 청태산과 오서산의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그려져 있다.

    시인이 아이를 데리고 낡은 한옥 앞에 서있다. 어찌된 연유로 갖게 된 집인지(원 시에는 사연이 언급되어 있다), 담장은 기울어지고 문설주는 틀어졌다. 이 첫 장면은 우리의 남루한 일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집의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담장을 허물지는 않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문을 떼어내었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아니면, 시인다운 호기에서 즉흥적으로 치른 일일까? 어쨌든 ‘눈이 시원해지는’ 근사한 일들이 벌어진다. 좁은 마당 대신 텃밭 수백 평을 정원으로 삼게 되고, 우듬지나 가끔 올려다 보이던 느티나무가 둥치째 다가오고, 거기 깃든 생명들과 가까이 서식하는 동물들을 온몸으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인의 눈과 마음은 점점 더 멀리 넓게 열려 길과 강과 산과 하늘을 담는다. 이 그림책은 호방한 목소리로 부자가 되는 법을 보여주는 진정한 부자경이다.

    소득을 재분배하고 성장과 복지를 선순환하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이 모쪼록 우리 사회의 철벽들을 무너뜨릴 수 있길 바란다. ‘부자’를 이물스러워하는 우리도 바라보고 있지만 말고 허무는 일을 저질러보자. 너와 나 서로를 가르는 담장, 끼리끼리 나누고 선 긋는 담장, 자기를 좁히고 가두는 담장을 허물어보자.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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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최정선/한국일보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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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9-08
    조회수 : 96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edeca29b0dbf4b28a0e77ca3787687d9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8. 31

     

    노령 인구 증가, 이른바 고령화는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미디어는 연일 새로운 이슈를 쏟아낸다. 정년 연장, 국민연금 수급, 일자리 창출, 고독사, 치매, 복지 예산…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서 노인은 객체다. 풀어야 할 숙제고 짊어져야 할 부담이며 뒤늦게 몰아 받거나 대신 갚아야 할 청구서다.

    그런 까닭에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를 읽는 기분은 더욱 특별하다. 올해 아흔넷이 된 영국 작가 주디스 커는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에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엄마와 어린 딸이 티타임을 즐기려는 순간 호랑이가 초인종을 눌렀고, 예의바른 먹보 호랑이를 환대하다보니 먹을거리가 다 떨어져서 온 식구가 저녁에 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깜찍한 이야기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행복하면서도 고단했던 작가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렇게 자신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노련한 이야기꾼이 평생의 반려자와 사별하고 아흔의 문턱에 다다라 이 책을 펴냈다.

    "사람들은 내가 홍차를 기다리는 줄 알아요." 은발의 할머니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다. 연한 풀빛 원피스, 보랏빛 카디건이 곱다. 책장을 넘긴다. 이런, 할머니가 하늘을 날고 있다! 빨간 재킷, 노란 타이로 멋을 낸 할아버지와 손을 맞잡고 하늘을 난다. 할아버지 어깨엔 앙증맞은 날개가 달려 있다. "사실 나는 헨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내 사랑 헨리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살아요."

    남편 헨리는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외출할 수 있단다. 그래서 둘은 날마다 티타임에 만나 이제껏 못해 본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돌고래와 수상스키를 타고, 스핑크스와 술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유니콘과 친구가 되어 낯선 도시의 하늘을 난다. 어제는 인어를 만났고, 내일은 달에 소풍 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내가 낮잠을 자는 줄 알아요. 하지만 모르는 말씀!" 현실과 상상, 두 개의 세계가 정답게 어깨를 겯는다. 추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사랑이 무르익어 간다. 정말 상상도 못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작별 키스를 나누고 돌아선 할머니 앞에 찻잔이 놓인다. 진하게 우린 홍차에 설탕은 두 스푼. 아흔 살의 삶, 아흔 살의 감성과 상상력은 이토록 화사하다. 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은 우리에게 눈, 귀 어둡고 손발은 느려졌으나 여전히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준다. 잊지 말자.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비바!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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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노란 봉지의 여행 [소윤경/한국일보 20170713]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7-18
    조회수 : 61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d67281f0da1343f6bc5433afb5a4acca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7.13

     

    값싸고 흔한 것, 얇지만 힘세고 튼튼한 것, 편리해서 매일 쓰이지만 하찮게 여기는 것,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존재 같은 것. 어느 날 작가는 비닐봉지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넣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멀쩡한데 이대로 끝내는 게 옳은 걸까’라고 말이다.

     

    수명을 다한 것에게 작가는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림책 ‘나는 봉지’는 노인경 작가의 따듯한 호흡이 느껴진다. 아이와 엄마는 장을 본 비닐봉지 꾸러미를 들고서 집으로 돌아온다. 천진난만한 아이와 달리 엄마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 보인다. 무슨 걱정이 있는 것일까? 아이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정체되어 버린 수많은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어깨를 더욱 늘어뜨리게 하는 건 아닐까.

     

    해맑은 아이에게는 버려진 비닐봉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노란 봉지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세상구경을 떠난다. 거리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신나게 하늘을 날던 봉지는 그만 안테나에 걸려 꼼짝없이 비를 흠뻑 맞게 된다. 그리곤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행인들에게 짓밟혀진 채로 더러워진 비닐봉지를 다행히 누군가 일으켜 세운다. 다시 기운이 난 노란 봉지는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도 하고, 집 없는 개와 거리의 가수의 노래를 함께 듣기도 한다. 공원에서 만난 고단하고 지친 여성은 노란 봉지에 잠시 기대어 눈을 감고 쉰다. 그렇게 긴 하루 동안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서 노란 봉지는 아이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아이는 노란 봉지의 헤지고 찢긴 상처에 밴드를 붙여준다.

     

    마치 수채화 드로잉 북을 보는 듯 가볍고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페이지 수도 인심 좋게 넉넉하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공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로 능숙하고 세련된 붓놀림이다. 마치 작은 열기구를 올라 탄 듯이 노란 봉지를 타고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청량한 여름날의 거리로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다. 흔한 것이 도시의 비둘기나 사람이나 비닐봉지나 다를 게 무얼까 싶다. 누구나 오래도록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바라겠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어느새 뒤처져가기만 한다.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고 잊혀지고 있습니다. 가끔 살아있는 것들도요. 모두가 일생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실패에 관대하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이다.

     

    그림책 작가 소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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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악어씨, 부디 행복하시길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0928 ]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조회수 : 855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6174fe7a4b164b48bf89e4a1d2bb5092

    필자 :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등록일 : 2017.09. 28

     

    동물원에서 태어나 18년 동안 동물원에서만 살다 죽은 호랑이 기사를 읽었다. 어미 대신 사람 손에 자랐기에 사육사 앞에서 뒹굴며 애교를 부렸고, 근친교배로 태어난 탓에 눈은 사시요, 걸음걸이도 편치 않던, 시베리아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시베리아호랑이가 번식기라 예민해진 동료에게 물려 죽었다. 우리 안으로 떨어진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사살당한 고릴라 이야기도 읽었다. 아이의 안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 비운의 고릴라를 추모하는 여론, 잠깐의 공백,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고릴라의 등장. 진부한 각본이다. 동물원은 종의 싸움에서 진 동물들의 포로수용소다.

    ‘악어 씨의 직업’을 읽는다. 눈에 띄게 긴 판형, 펼치면 가로세로 3:1 비례의 화면이 크고 작은 컷들로 오밀조밀하다. 글은 없다. 평범한 아파트 침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악어씨가 잠을 깬다. 아침 7시. 통나무 베고 누워 유유자적 별빛을 즐기던 건 지난밤 꿈이다. 후다닥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변기에 앉아 끙끙대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르고, 식탁에 앉아 뻑뻑한 빵에 잼을 바른다. 윗집도 아랫집도 옆집도 별다를 바 없는 일상, 도시의 아침이다.

    트위드 코트에 중절모를 챙겨 쓴 악어씨가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누는 어색한 인사, 차들이 빠르게 오가는 거리, 끝없이 늘어선 상점들, 제 갈 길 가느라 바쁜 이들, 흙탕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자동차, 지하철로 향하는 거대한 행렬, 곳곳에 붙은 요란스러운 광고판, 지옥철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열차 안, 아침마다 마주치는 얼굴들…. 너무나도 익숙해서 꼭 내 이야기 같은 악어씨의 출근길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 책의 반전은 악어씨의 일터가 동물원이라는 사실. 예상치 못한 일격이다. 악어씨는 탈의실에 옷을 벗어 걸어 두고 우리로 들어가 유리벽 너머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한다. 몸을 길게 뻗고 이빨을 드러내고. 신문을 보다가 전화를 하다가 나무에 매달려 포즈를 취하는 원숭이들 옆에서. 발칙한 상상력에 한바탕 웃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자신을 연기하는 게 직업이라니, 이게 우리 삶이라니. 결국 우린 모두 밥벌이를 위해 자신을 내놓고 광대놀음을 하고 있는 걸까.

    결 고운 그림에 만만치 않은 속내를 감춘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진짜 악어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면, 동물원 악어 노릇이 정말로 직업이라면, 저들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저녁밥을 해 먹고 밀린 빨래를 하고 TV를 보면서 저마다 제멋대로 시시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그러면 좋겠다고.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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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마법같은 날들 되시길......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20-01-22
    조회수 : 663

    엄마와 아이가 숲속 오두막집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때는 아빠와 함께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컴퓨터에 앉아 매일매일 글을 쓰고,

    아이는 쇼파에 누워 게임기 버튼을 눌러댑니다.

    아빠의 부재도, 엄마의 무관심한 모습도...

    게임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책을 덮고 싶은 안타까운 장면이지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갈까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은

    풍경이 되어 버렸음을 상기합니다.

     

    엄마는 고함을 지르고 게임기를 뺒습니다.

    아이는 엄마 몰래 게임기를 챙겨 밖으로 나갑니다.

    온통 진흙탕으로 범벅이 되고

    비까지 내리는 숲으로 말이지요.

    그러다가 그만 게임기를 연못에 빠뜨리고 맙니다.

    망연자실 앉아 있다보니 포기와

    체념의 순간이 지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달팽이도 눈에 들어오고

    수많은 버섯의 향기도 전해집니다.

    마침 비가 그치고 해가 떴습니다.

    나무사이로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집니다.

    아이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넘어집니다.

    거꾸로보는 세상은 새롭게 느껴졌어요.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웅덩이로 뛰어 들어 마구마구 물을 튀기기도 하며,

    세상을 다시 느끼고 긍정합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그리운 아빠의 얼굴이 보입니다.

    엄마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침묵에 귀를 기울였어요.

    "이런, 홀딱 젖었네. 이리와, 엄마가 닦아 줄게."

    엄마는 큼지막한 수건을 들고

    아이를를 주방으로 데려갔어요.

     

    아이는 엄마를 꼭 껴안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게 다였어요.

    아무것도 아닌,

    그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날에 말이죠.

    엄마와 아이는 하얀김이 솔솔나는

    따뜻한 컵을 앞에 두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마지막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휴~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무슨 엄마가 자기 글 좀 쓴다고

    아이를 이렇게 방치해두고 있어?

    프랑스 엄마들이란... 쯔쯧... 하며

    책을 처음 펼치면서 들었던 나의 감정이 미안해집니다.

    남편의 부재속에서 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젊은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집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만큼 진실된 감정이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결혼조차 피한다고 하니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마음들이

    잊혀져 갈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가정의 소중함만큼

    인류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나와 화해하고,

    남편을, 아내를, 아이를, 엄마를, 아빠를,,,,,

    가만히 꼭 껴안고 싶은

    마법같은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매일매일 마법같은 날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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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있기 미션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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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조회수 : 1068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864daed2f4284402adb295375e8b62ee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10.12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위협하는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텀블러 등등… 사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화관계망서비스(SNS)들이 전 세계 젊은 유저들을 사로잡기 위해 무한 경쟁 중이다. 스마트폰의 새 기종이 소개 될 때마다 장착된 카메라 사양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SNS에 올릴 사진들의 퀄리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여행, 결혼, 출산 같은 삶의 하이라이트와 온갖 기발한 사건 사고까지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퍼져나간다. 주인공은 물론 나 자신이다. 이제 주인공으로서 외모적 품격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적절한 상황 연출과 이미지 가공이 필요하다.

     

    자 오늘은 어떤 셀카로 팔로워를 만나볼까? 그림책 ‘셀카가 뭐길래!’의 주인공은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달려온 세월의 무게만큼 두둑한 뱃살과 고된 사회생활로 뿌리 뽑힌 머리칼들이 이제 한 줌 정도 밖엔 남지 않았다. 직장인의 바쁜 일상은 주말을 향해 질주한다.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일, 주인공은 오롯이 자신만 꽉차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화장실이나 소파, 부엌 등 집안에서는 번번이 식구들이 방해가 된다. 거리로 나와 봐도 어디나 사람들이다. 배낭을 꾸려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떠나고, 조용한 동굴이나 깊은 산속까지 도망쳐 보아도 헛수고다. 불쑥불쑥 끼어드는 불청객들 때문에 혼자만의 셀카는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산꼭대기 정상에 올라서야 주인공은 드디어 환호한다. 야호!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발한 방해꾼 때문에 완벽한 순간은 박살 나버린다. 급기야 산에서 굴러 떨어져 조난을 당하고 만다. 주인공은 자신만의 셀카 찍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대인에게 한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깝다. 셀카 찍기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행위이다. 내 삶의 타이틀은 몇 개나 될까? 누군가의 자식이며, 배우자이고 동료이기도 하며 부모가 될 수도 있다.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마땅한 의무와 책임에 쫓기다 보면 퇴색해 가는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다. 중년의 고비에서 자신의 정체성은 흔들리는 이처럼 위태롭다. 일탈을 꿈꾸며 짧은 순간이나마 틀에 박힌 구도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한번쯤은 SNS상에서라도 누군가에게 통쾌함이거나, 배꼽 잡는 웃음, 따뜻한 공감이 되길 바란다. 함께이거나 다시 홀로. 사람들 사이도 기타 줄처럼 적당한 간격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낸다.

     

    가을이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붉은 단풍아래에서 견고한 고독과 마주 설 시간이다. 이왕이면 젊고 멋지게 셀카 한 장 찍어 올려보자.

     

    그림책 작가 소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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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끼는 걸 버려봐 자유를 얻을 테니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117 ]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조회수 : 69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389fb126e86246c394ad87577f8632ad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11.17

     

    여행을 떠날 때, 짐은 최대한 단순하고 가벼워야 한다. 속옷 몇 벌과 편한 옷들, 간단한 세면도구와 의약품들. 그리고 배낭에는 여분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추억이 담길 자리다. 채워질 것은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나눠 줄 선물들이다. 요즘은 해외에 나갈 때 책과 노트를 담기보다는 여행지에서도 휴대폰으로 맘껏 인터넷을 쓸 수 있게 준비해간다. 지도를 보며 길을 몰라 헤매다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배낭을 들고 빈 숙소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여행지의 밤,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맥주에 담소를 나누기보다는 호텔방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고 인터넷으로 다음 여행지 정보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홉 살 마르쿠스는 아빠를 만나러 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마르쿠스는 배를 타고 모기와 악어 떼가 반기는 밀림 속 탕가피코 강을 9일이나 항해해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탕가피코 강의 규칙이다. 배가 정박하는 항구마다 누군가의 물건을 받으면 자신의 가방을 열어 그들이 선택한 것을 주어야 한다. 첫 정박지에서 한 소녀가 도자기 조각상을 건네주며 마르쿠스의 MP3를 달라고 한다. 이어 두 번째 항구에서는 깃털 모자를 쓴 남자가 피리를 주고 아끼는 게임기를 가져간다. 매번 내리는 곳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평등한 물물교환을 해야 하다니 끔찍한 여행이 아닌가!

     

    어느 항구에서 마르쿠스는 한 할머니에게 운동화와 양말까지 내주고 작고 시시한 상자를 받는다. 막상 맨발이 되자 이상하리만치 자유로운 기분이 되어간다. MP3와 게임기를 내어주니 밀림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피리를 불며 새들과 교감한다. 또한 운동화와 교환한 상자 속 크림은 모기 물려 가려운 상처를 낫게 하고 더는 물리지 않게 해준다. 선장에게서 배운 나무 조각으로 시간을 보내며 진정한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어준 것들, 비워둔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움이 채워진다는 것을.

     

    ‘아프리카 원숭이 사냥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가 잔뜩 든 자루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구멍만 뚫어 놓으면 된다. 원숭이는 사냥꾼들이 자신을 잡아 갈 때까지도 구멍에서 손을 빼고 달아나지 못한다. 손에 잔뜩 움켜쥔 먹이를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시계추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할 방법이 없을까? “여행 떠날 짐을 꾸리세요, 구멍에서 빠져나올 만큼 최대한 작은 봇짐으로!”

     

    그림책 작가 소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