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키핑
  • Charles Keeping (찰스 키핑)

    런던출생.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열 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조판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4년 후 제대했다. 이후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4남매를 두었다. 런던의 지역적 색채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독특한 색 분리로 유명한 작품 <찰리, 살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다> (1967)와 잔혹한 아름다움이 있는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베달을 받았다. 그는 평생 이백 여권 정도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그 중에는 스무 권 가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으로 그는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 스키스와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찰스 키핑은 런던의 동쪽 지역인 럼베스 거리에서 1924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무척 작았는데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거리"의 위험에 대해 주의를 주곤 하였다. 당시 런던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자본과 인간이 범람하며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을 시점이었다. 거리는 마차와 행상이 물건을 나르고 장사를 하느라 무척이나 혼잡했다. 아버지는 이런 환경에서 하나 뿐인 아들이 돌아다니다 다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핑은 주로 집 뒤에 있는 작은 마당이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당에는 그늘져 어두운 정원이 있었고 울타리가 잇어 바깥을 볼 수 없는 평범한 장소였다. 그에 비해 방은 창가를 통해 이웃에 있는 마구간이나 시장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 하나밖에 없는 누이 그레이스가 함께 놀아주었지만 그리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성장해서도 고향집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 르네 마이어의 말에 따르면 켄트에 위치한 큰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키핑은 과거의 정원을 재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큰처에 있는 프랭크 브라이언 남학생 학교에 입학한다. 그 즈음어었을까. 그는 항상 무언가를 관찰하여 그리고 있었다. 그 그림은 주로 연필로 그린 간단한 드로잉이나 소묘였는데 선이 돋보이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덟 살이 된 키핑은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해 그는 가족의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가까운 친척이엇던 앤 아주머니의 남편이 오랫동안 앓던 결핵으로, 아버지가 궤양으로 진단 받은 3주 후 명원에서 삶을 마감하였다.(그의 나이 마흔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어 할아버지까지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그에게 이제까지 대화를 하고 얼굴을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이 오늘 차가운 물체로 변해버린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고 죽음은 그에게 마음 속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이 없어지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키핑일가는 1937년 즈음 이웃 동네로 이사해야만 했다. 집 주인이 집을 팔아버려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엇다. 키핑은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 있었다. 이것도 잠시, 열 네살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만 했다. 그가 취직을 한 곳은 윌리엄 클로위즈 앤 선즈라는 유명한 인쇄소였다. 이 곳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이 책으로 인쇄되고 있었는데 그는 활자로 인쇄판을 짜는 조판공으로 일했다. 후에 그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인 석판 기술을 이곳에서 익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준 높은 인쇄물을 보며 언젠가는 그들처럼 될 것임을 굳게 다짐했다.

    다시 시작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총을 들 수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군으로 향했다. 키핑 역시 1942년 열 여덟살에 영국 해군에 입대하여 4년 동안 무선전신통신사로 복무한다. (입대하기 직전 전기 사용량 검사원으로 일한 경험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할 점은 어린 시적은 키핑의 내면 세계를 평생동안 지배한데 반해 4년 동안 겪은 전쟁은 그다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성인으로 성장하기 전의 시간을 더 민감하고 세밀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아무튼 기핑은 제대 후에 리젠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대학 수준의 종합 기술전문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 학교에서 만난 르네 마이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이 하굑의 커리큘럼은 특정 분야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두루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며 어느 분야에서 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정했는데 여기에는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인 르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일러스트레어터의 기록

    1949년 그는 본격적으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출판물은 테드 카반나흐의 (1955)이라는 소설이었다. 이후 10년 정도는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글이나 광고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브록햄튼 출판사에 그림책 가제본을 가져가면서 <검은 돌리>(1966)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 (물론 틈틈이 에밀리브론테, 찰스 디킨스, 알프레드 테니슨, 도스토에프스키 같은 소설가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에서 글은 상징적인 역할만 해내면 그림만으로도 내러티브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찰스 키핑은 이런 그림책의 장르적 특징을 온전히 이해하여 수준 높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가 남긴 200여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서 그를 영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어 준 것은 스물 두어 권 정도의 그림책이었다. 그의 스타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석판인쇄를 이용한 색 분리였다. 색감에 상당한 자신감이 잇었던 키핑은 당시 함께 일을 하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 부탁하여 비엔나의 유명한 이쇄업자에게 인쇄를 맡기게 했다. 그는 네 가지 색을 분리하여 현대의 인쇄 수준으로 보아도 결코 뒤떨어 지지 않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또한 <찰리, 샬롯데 그리고 황금 카나리아>(1967)에서는 컬러 인쇄에 드로잉선을 따로 그리거나 잉크를 번지게 하여 독특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가슴에 박혀있는 칼날

    이들 그림책은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많았고 간혹 간담이 서늘해지는 잔혹한 픽션도 잇었다,(알프레드 노이어가 글을 쓴 <노상강도>는 어린이가 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비평가들의 비난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책에 등장하는 건물이나 배경을 고향 집 그대로 묘사하거나 간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내곤 했다. <션과 수레 말>(1966)을 보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작은 정원이 딸린 집은 틀림없는 키핑의 고향집이다. 또 어떤 책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대로 보이고 간판에 >키핑 중국집> 혹은 <가필드와 기핑재활용 상사> 등이 쓰여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실제적인 삶이 담긴 3부작 시리즈는 그가 10대 무렵에 써놓은 시를 바탕으로 작업외었다. 처음 그는 3부작 시리즈(2부까지 BBC TV 시리즈로 제작됨)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 제의했지만 내용이 너무 실험적이라 일정은 뒤로 미뤄져 1969년이 되어서야 출간이 된다. 첫 번째 시리즈는 <조셉의 뜰>로 조셉이라는 내향적이고 신경질적인 소녕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겨있다. 이는 기존에 그림책 속 어린이는 모름지기 발고 병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으로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엿다. 이어 나온 <창 너머>(1970)역시 다르지 않았다. 죽음과 돌발적인 폭력, 그리고 곁눈질, 커튼의 문양에 따라 주인공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으로 이는 3부 <정원의 헛간>(1971)에서 마무리된다. 그런데 마지막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은 키핑은 <거미줄>(1972)을 내고서야 충분히 만족했다고 한다. 이 3부낙은 키핑 그 자신이 느낀 죽음과 삶에 대한 심오한 시선을 표현한 것이었다.

    아담과 천국의 섬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린 독자에게 너무 어려우며 심리적인 접근으로만 보아서는 성인도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받은 비난이었으며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국 이외에 외국 독자에게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20세기 초반의 런던의 거리, 그 암울하고 쓸쓸한 열정은 성인 독자에게 더 열광적으로 읽혔고 키핑은 그렇게 그림채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리고 1973년 즈음에 가서는 현란한 색채 대신에 갈색(진정한 런더늬 색깔이 아닐까)을 많이 써서 선을 살리는 작품을 보인다. 그는 말년에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작업에 참고를 하려고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르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언제나 런던 거리를 생각했으며 여행 중 인상적인 곳이 잇으면 나중에 여운을 생각해내서 그렸다고 한다. 키핑이 현대 영국 일러스트레이션을 굳건히 이끌어가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여름날. 그는 아침을 먹은 후 작업을 하던 중에 통증을 느겻다. 머리를 나즈막하게 울리는 아픔은 계속되었고 병원을 찾은 그는 종양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작업을 계속하던 찰스 키핑은 일년 후인 1988년 5월 16일. 늘 일하던 스튜디오에서 예순 여섯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03.2월호 월간일러스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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